[기획기사] 다산(茶山)의 애제자 황상(黃裳)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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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8.0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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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의 애제자 황상(黃裳)재조명
-견서여시(見書與詩) 등 다산가(茶山家)와 황상가(黃裳家)의 간찰(簡札)-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茶山)정약용(1762~1836)과 그의 애제자로 다산의 학문과 예술을 계승&8228;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진 치원(&21358;園)황상(1788~1870)과 관련된 자료 30여점을 강진군과 서울예술의전당이 공동으로 발굴하여 일반 공개(8.7~9.5)에 앞서 4일 오후3시 강진군청 소회의실에서 최초로 언론에 공개했다.
이번에 최초공개&8228;전시되는 유물을 살펴보면, 다산이 황상에게 보낸 간찰(簡札)견서여시(見書與詩)등 17점, 추사(秋史) 김정희가 황상에게 보낸 종이에 쓴 서찰 치원진완(&21358;園珍玩)과 그의 두 동생(명희, 상희)이 보낸 편지 등 5점, 추사(秋史)의 제자이자 한국화의 대가인 소치(小癡) 허련이 보낸 수묵화 1점 등 모두 30 점에 이른다.
이중 특히 눈에 띄는 유물은 단연 견서여시(見書與詩)로 다산이 제자 황상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 내용 중에는 “황상을 열흘 만에 제자로 받아들였으며, 여러 제자 중에 학문적, 인품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아끼는 제자다”고 쓰여 있다. 또 다산이 황상에게 “학문에 정진하면 크게 성취할 수 있으니 부지런히 연마하라”고 말 한 것에 대해 제자 황상은 스승 다산에게 “부지런함이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이에 다산(茶山)이 “삼근계(三勤戒) 즉 세 가지가 부지런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학문을 좀 한다는 자들에게 세 가지 큰 병통(문제)이 있는데 너에게는 해당하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첫째 외우기를 빨리 하면 재주만 믿고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이 있고, 둘째 글재주가 좋은 사람은 속도는 빠르지만 글이 부실하게 되는 폐해가 있으며, 셋째 이해가 빠른 사람은 한번 깨친 것을 대충 넘기고 곱씹지 않으니 깊이가 없는 경향이 있다”라고 대답했다.
다산은 이어 “둔한데도 계속 열심히 하면 지혜가 쌓이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며, 답답한데도 꾸준히 하면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된다"며 제자를 격려했다. "둔한 것이나 막힌 것이나 답답한 것이나 &039;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면&039; 풀린다"는 게 다산(茶山)의 가르침이었다. 황상은 이를 삼근계로 마음에 새겨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견서여시(見書與詩)에는 또 다산(茶山)의 친형이자 흑산도에 유배가 있는 정약전(丁若銓)과 황상 사이에 오고간 간찰 내용이 기록돼있는데, 그 내용은 “황상이 정약전을 찾아가 만나고 싶어 한다”는 편지를 쓰자, 정약전은 답신을 통해 “육지 사람이 바다에 오는 것이 쉽지 않고, 경비가 많이 드니까 나한테 올 생각 말고, 네가 존경하는 다산한테 물어 배워라”고 편지를 썼다.
추사(秋史) 김정희는 치원진완(&21358;園珍玩)에서 추사와 두 동생 김명희, 김상희는 황상의 문집을 모두 읽고 평하기를 “황상은 이 세상에서 최고다. 황상만이 지을 수 있는 시(詩)이다”며 황상의 학문적 깊이와 독창성을 극찬하고 있다. 당대 시(詩)의 1인자로 추앙받던 추사(秋史)는 황상의 시(詩)에 대해 두보(杜甫), 한유(韓愈), 소식(蘇軾), 육유(陸游)의 시를 완벽하게 습득한 후 자신의 독창적인 시(詩) 세계를 완성했다고 평했다.
또 다산의 장남 정학연(丁學淵)은 황상에게 보낸 서찰에서 “황상과 그의 자식, 그리고 정학유 세 집안은 죽을 때 까지 변치말자”는 내용의 정황계첩(丁黃契帖)을 지어 두 집안의 우정을 다짐하기도 했다.
한편, 강진문화재연구소장인 청광 양광식 선생은 이번에 공개된 다산 유물에 대해 “지금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공개된 다산 유물 중 가장 소중한 것들”이라며 다산가(茶山家)와 황상가(黃裳家)의 학문적 인연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