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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의 청자가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알려지고 수중금에서 청자는 고려청자라고 인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간 도공들의 정성과 지혜가 함께한 세월이 무수히 지났습니다. 개경에서 멀리도 떨어진 탐진에서 오로지 청자 하나만을 생각하며 사는 도공들의 열정이 있었겠지요 그냥 그날이 연속되는 청자를 빗는 것이 아닌 오늘의 청자보다 보기 좋은 보물로 만들고 싶은 심정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새로운 청자에 고민하는 김도공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이제 청자의 황금기를 맞이하는 그날을 향하여 가는 여정에 함께 하겠습니다. 추석 명절날 입니다. 풍성한 한가위 되십시오
탐진만의 흙이어야 완전한 비색의 청자. 고려 청자는 탐진 청자요 이것이 중국의 것보다 뛰어나다는 평을 얻었다니 선조들의 기술과 안목이 존경스럽습니다.
강진 청자는 초기에는 당 나라의 영향을 받았지만 고려에 와서는 고려인의 집념과 열정으로 고려의 특징을 잘 나타내기 시작했다.오죽하면 당나라 황제가 "청자는 고려를 뛰어 넘을 수가 없다"고 했을까 깊이 생각 할 문제다. 현대 우리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이 세계를 뛰어 넘고 있지 않는가? 세계적 고려 청자를 만들었던 한국인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당을 뛰어 넘은 탐진 청자 고려 초기에는 개경을 비롯해서 전국의 여러 곳에서 청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이제 탐진을 비롯하여 불과 서너 군데에서만 생산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 이유가 비색 때문이라고 하는데 비색이란 비밀스러운 색깔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향리의 표현에 의하면 '초여름 산자락 빛깔'이며 이 색깔은 탐진에서만 산재해 있는 '태토'를 써야만 나온다고 하였다. 그러니 다른 지역에서는 도저히 그 빛깔을 낼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였을 것이다. 고려는 물론 당나라에서도 이 비색 만큼은 따를 수가 없었다니 참으로 자랑스럽다. 오죽 하였으면 당나라 황제 휘종이 "청자는 고려를 뛰어 넘을 수가 없다"고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탐진 향리와 도공들은 이 비색을 당나라 도공들이 머지않아 만들어 내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니 탐진 청자가 꾸준히 천하제일이 되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향리는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김 도공을 비롯한 여러 도공들은 나전칠기 기법으로 화려한 문양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림은 고려화가들과 당나라 화공들의 수준 차이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려청자가 천하제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도공들의 이 같은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탐진의 청자는 도자기 보는 안목이 뛰어난 송나라 사신조차 감탄하게 되었다. 탐진의 청자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도공들의 희생 그리고 그 분들의 노력과 정성과 염원을 담은 기도가 있었을까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강진청자 이야기 제32회에서는 청자를 품평하는 세 가지 기준을 배웠다. 이제 어디 가서 청자를 보면 아는 체 할 수 있을 듯하다. 청자 보는 안목을 키워주신 정찬주 선생님께 거듭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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