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소통과참여 > 강진글사랑 > 역사소설
모바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이 페이지로 바로 접속합니다.
48 hit/ 274.6 KB
다운로드
미리보기
5 hit/ 98.9 KB
사찰에서 쓰일 똑같은 고려청자(항아리)를 보았어도 어떤이는 술이생각나고~~~어떤이는 관년한 처자가 생각나고~~~하나의 현상에 여러가지의 생각이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것이 당연하고그런 나와의 다른 생각들이 모여 우리사회를 이루어 가고있 지금의 세상은 내가 생각한것은 무조건 맞고네가 생각한것은 무조건 다르다는 현실이 못네 아쉽습니다~~
남도답사1번지 강진의 대표적인 사찰 무위사가 그려지는 군요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홍매화가 아름답게 피워 부처님께 향을 전하는 곳입니다. 국보와 보물이 단일 사찰로는 제일 많고 국사책에도 나오는 무위사 백의관음도는 백미입니다 지금도 옛 절터의 그려지고 있습니다. 고려청자는 누군가의 정성으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었군요 고난의 길을 헤쳐나가는 그 손에 복을 기원합니다.
무위사는 탐진청자 집산사찰로 명성이 높은 절이다. 불교가 국교인 고려에서는 스님과 사찰의 권위와 역활이 대단했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현 시대에 과연 성직자와 종교의 권위가 있는가? 권위가 지배하는 세상이 그립다. 현재 탐진청자 즉 강진 청자의 위상과 권위는 어느정도 일까? 또한 현대 성직자의 권위는 어느정도 일까? 올해 강진 청자 축제를 보았던 시간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탐진청자와 무위사 내가 크게 착각한 것이 있다. 청해진이 해체된 후 탐진 청자는 한동안 대가 끊긴 줄로만 알았다. 청해진 주민들은 종으로 끌려가기도 하고 도공들도 다 떠났으며 가마도 하나 둘 없어졌기 때문이다. 고려 광종 때 왕비를 비롯한 고관대작들이 애용하던 청자는 청해진 시절에 만들어진 것들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28회를 읽어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탐진청자는 청해진이 해체된 후에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무위사가 탐진청자 집산사찰이었다고 한다. 무위사에서 다른 사찰을 비롯하여 왕궁이나 도성 고관대작들에게 전파되었던 것이다. 최씨와 하씨는 조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하여 탐진으로 가고는 있었으나 당장 거쳐할 곳이 없었다. 그런데 무위사 주지스님이 이들의 성실함을 알아보고 가리포 법화사에 가 있는 상좌에게 서찰을 써주었다. 이들을 법화사에 머물게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성실한 이들의 역할이 기대된다.
청자 찻잔에 따른 차! 갑자기 마시고 싶어집니다. 왕건을 돕다 궁예에게 죽임을 당한 선각대사의 이야기를 주지스님께 듣는 최씨와 하씨는 밥 한 그릇도 그냥 얻어먹지 않는군요. 무위사 경내가 깨끗해졌으니까요. 청해진으로 가는 그들의 앞날이 무탈하길 바랍니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결과보기
자바스크립트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일부기능이 작동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