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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흐르는 밤 학창시절 역사 시간에 배운 왕의 묘호를 생각할 때 두가지 것이 떠오르곤 한다. 하나는 시대순에 따른 왕의 묘호와 또 하나는 조,종의 구분이다. 조선시대는 순서는 태정태세문단세... 고려시대엔 태해정광... 이런식으로 외웠던 것 같다. 태조 정종 태종 세종...태조 혜종 정종 광종... 그 왕들 중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기고, 왕조의 기반을 다진 왕이 조선의 태종, 고려의 광종이 아닌가 싶다. 그들과 함께 중국의 당태종 이세민, 내 아들 조세민도 떠올라 민망하다. "깨달음이 빛,청자"가 격변을 거쳐 장보고의 신라에서 고려 광종 대로 퀀텀 점프하였다. 1부는 장보고의 청해진을 중심으로 당 월주요의 기술을 도입한 초창기였다. 장보고의 휘하 군관들의 후손들이 면천되어 청해진으로 가 조상의 뜻을 받들어 장보고와 정년의 제사를 모시려고 한다. 제사라는걸 그저 관습처럼 여겼었는데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보니, 그걸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는 것같다. 그들의 육신은 가고없으나 혼만은 내 가슴에 살아숨쉬는 것 같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이야기를 언급했다. 부모 자식만큼의 관계를 넘어서는 이야기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장보고와 정년의 뜻을 기리는 정월 보름의 제사와 본격적인 "깨달음의 빛,청자"를 그려나갈 2부 다음회가 더욱 기대된다. 고려하면 "고려청자"이므로. 제삿날 아침이면 半白의 머리칼 올올이 정성들여 염색을 합니다 별과 서리가 스무 해 내렸지만 그냥 깜장머리 막내입니다 子時가 되어 서늘한옷자락으로 저승의 하늘을 건너오시는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며 盞 가득 눈물 따릅니다 이승의 짧은 밤은 燒紙 올리는 불빛에 이울고 어머니의 입술 자욱 선명한 盞을 비웁니다 -飮福을하면서/오탁번
고려시대로 소설의 중심이 옮겨졌군요. 장보고와 정년의 시대가 벌써 그리워집니다. 수 천, 아니 수 만 년 그 이상 내려오던 제사라는 것, 지금 우리는 제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요?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실제 죽은 이가 돌아오는 듯이 경건한 마음으로 치렀던 것이 제사 아니었던가요? 장보고와 정년의 제사를 지내는 후세들의 생각이 갸륵합니다. 광종의 노비안검법! 역사책에서 무수히 많이 듣던 제도네요. 호족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왕이 시행한 노비안검법을 왕은 별궁에서조차 예외없는 답변을 하며 강력하게 밀어부치는 기세네요. 앞으로 어떻게 청자 시대를 열지 궁금합니다.
청자를 제대로 만들기 시작한 1세기 만에 고려 왕권 강화 군주 광종 시대에 와서 왕가에서 탐진 청자다기( 항아리, 찻잔, 다관, 다식접시와 퇴수기 등)가 사용되고 있음은 앞으로 탐진 청자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암시한다.노비안검법과 과거제도 시행 등으로 고려 왕권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자 다기와 차 이야기가 흥미롭다.청자를 통해 고려사를 다시 공부하는 느낌이다. 작가님의 知驗無涯 덕분이다.
노비안검법으로 100여년만에 고조부에서 조부, 조부에서 아버지, 아버지에서 들었던 고향이란곳에 간듯합니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고향이지만 폐역향리의 노비 출신이라고고 손가락 받을리 없는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귀향 한 듯합니다 이들로 인하여 탐진청자의 맥이 이어질 듯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대목왕후가 탐진에서 생산된 청자 다기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흥미로웠다.당시 청자는 고가였고 왕족이나 부호들이 아니면 가질 수 없었다니 그럴 만하다.왕후의 다기를 본 광종조차 월주청자보다 탐진청자가 아름다워 장차 정궁에서 사용하겠다니그 동안 침체되었던 탐진청자의 불씨를 되살리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 다행으로 여긴다.또한 장보고 사후 반란군으로 몰렸던 청해진 군사들이 노비안검법의 수혜로 귀향하게 되어그들이 장차 탐진청자의 중흥에 이바지하게 될 것으로 기대를 하게 되는 27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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