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뜨꺼워 지는 삶을 산적이 있는가?
- 작성일
- 2023.10.06 10:07
- 등록자
- 김태중
- 조회수
- 87
첨부파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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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리”라는 마을입니다. 울 동네, 강진군에서 가장 큰 마을입니다.
평소에 20명, 아니 20분이 이상 그것도, 여자 노인당에서, 모여 화투놀이들 하시든, 말싸움을 하시든, 아니면 그냥 누워 계신 분, 그곳에 노인분도 이제는 아홉 분 만이 계십니다. 물론, 안 나오신 분들도 계시겠죠? 그러나 계절이 다르게 한분, 한분 빠지십니다. 이 양반들은 어떻게, 그 고통이라 할까요? 그 현실을 받아들이시는지 궁금합니다. 일요일 때입니다. 아적에 팔순 노모께서 깨를 비어 놓고, 뭉탱이를 만들어 운반을 해야 하는데, 힘이 부치십니다. 셋째인 내게 새벽녘에 전화를 해서 운반을 하고자와, 아양 비스꾸리,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새벽녘에 잠이 들어 옴짝 달싹 할 수 없으매, 무뚝뚝한 어조로 거절을 표합니다. 엄니는 화가 나셨는지 큰 목청으로 쌍욕을 퍼 붓습니다.ㅋㅋㅋ, 나는 다행이라 여기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내 어미가 아직은 정정하시구나, 괜찮으시구나, 안도의 한숨을 뒤로하고, 차분한 마음가짐에 잠이 더 잘 왔습니다. 내 엄니가 오래오래 사시지 않길 맘 내 속삭였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훌륭한 일을 하여 후세에 명예로운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풍자 해 보면, 남자는 벼슬을 달아야 하는데, 달지 못하면, 학생부군신위(學生府君神位)를 지방에 기재하고, 여자는 현빈유인(顯妣孺人)누구누구, 이렇게 기재합니다. 근데, 벼슬은 당시, 남자에게만 있었습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거의 모두가 학생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몇 해 전 삼성 이건희 회장은 고인이 되셨습니다. 그는 관직보다 높은, 사회에서 인정한 세계적인 굴지의 구룹 회장이셨습니다. 과연, 목관위에 학생부군신위라는 문구가 들어갔을까요? 대단히 궁금합니다.
나의 엄니는 남들보다 더한 굴곡진 인생살이를 살았고, 지금도 살고 계십니다. 아주 어린나이에 가족의 맏이로써 학교 문턱은커녕, 글도 쓰지 못한 채 가족의 생계를 할머니와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한 이후로는 농업의 현장에서, 시장 통에서, 재첩(경조개)을 캐는 바다현장에서 자식들의 삼시세끼를 책임져야 되는 일념으로 한 평생, 당신의 인생을 뜨겁게 살아 오셨습니다. 지금도 야위어진 육신으로 자식들의 반찬꺼리를 만들고 계십니다. 쉬엄쉬엄, 하셨으면 하는 자식들의 바람도 있고 해서 말씀 드리지만, 혼구녕 납니다. 당신께서 해 오신 익숙함이 있기에 가당치 않으신 모양입니다.
여름이라 주기적으로 입원하십니다. 전번 입원해 계실 때 몸의 기운이 조금 올라오자마자, 조퇴를 하시곤, 고추밭으로 달려가셨습니다. 우격다짐으로 홀로 만사를 정리해 놓으시고, 다시 입원하여 앓아 누우셨습니다. 이 번 입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땡볕이 내리쬐는 현장에서 탈이 나신 것입니다. 특히나, 워낙에 음식 드시는 것을 귀찮아 하셔서 더욱 야위어 갑니다. 이런 와중에도 여름작물이, 겨울김장배추가 걱정이 되신다 합니다. 경제논리로 따지자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버리겠죠, 그러나 엄니의 숭고한 삶을 어찌 경제논리로만 해석할 수 있을까요? 하루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는 엄니의 모습이 짠 할 뿐입니다.
내 엄니는 해방 전의 태생이십니다. 해서, 교육이란 것은 먼발치의 부러움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못 다한 원을 자식들에게 만큼은 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젊음과 함께 당신의 평생을, 일생을, 자식만을 위해서, 여한 없이 열의와 열정을 다하셨을 겁니다.
엄니의 노고와 뜨거운 열의와 열정에 준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지역사회활동가, 밥상차리는농사꾼 김태중
평소에 20명, 아니 20분이 이상 그것도, 여자 노인당에서, 모여 화투놀이들 하시든, 말싸움을 하시든, 아니면 그냥 누워 계신 분, 그곳에 노인분도 이제는 아홉 분 만이 계십니다. 물론, 안 나오신 분들도 계시겠죠? 그러나 계절이 다르게 한분, 한분 빠지십니다. 이 양반들은 어떻게, 그 고통이라 할까요? 그 현실을 받아들이시는지 궁금합니다. 일요일 때입니다. 아적에 팔순 노모께서 깨를 비어 놓고, 뭉탱이를 만들어 운반을 해야 하는데, 힘이 부치십니다. 셋째인 내게 새벽녘에 전화를 해서 운반을 하고자와, 아양 비스꾸리,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새벽녘에 잠이 들어 옴짝 달싹 할 수 없으매, 무뚝뚝한 어조로 거절을 표합니다. 엄니는 화가 나셨는지 큰 목청으로 쌍욕을 퍼 붓습니다.ㅋㅋㅋ, 나는 다행이라 여기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내 어미가 아직은 정정하시구나, 괜찮으시구나, 안도의 한숨을 뒤로하고, 차분한 마음가짐에 잠이 더 잘 왔습니다. 내 엄니가 오래오래 사시지 않길 맘 내 속삭였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훌륭한 일을 하여 후세에 명예로운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풍자 해 보면, 남자는 벼슬을 달아야 하는데, 달지 못하면, 학생부군신위(學生府君神位)를 지방에 기재하고, 여자는 현빈유인(顯妣孺人)누구누구, 이렇게 기재합니다. 근데, 벼슬은 당시, 남자에게만 있었습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거의 모두가 학생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몇 해 전 삼성 이건희 회장은 고인이 되셨습니다. 그는 관직보다 높은, 사회에서 인정한 세계적인 굴지의 구룹 회장이셨습니다. 과연, 목관위에 학생부군신위라는 문구가 들어갔을까요? 대단히 궁금합니다.
나의 엄니는 남들보다 더한 굴곡진 인생살이를 살았고, 지금도 살고 계십니다. 아주 어린나이에 가족의 맏이로써 학교 문턱은커녕, 글도 쓰지 못한 채 가족의 생계를 할머니와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한 이후로는 농업의 현장에서, 시장 통에서, 재첩(경조개)을 캐는 바다현장에서 자식들의 삼시세끼를 책임져야 되는 일념으로 한 평생, 당신의 인생을 뜨겁게 살아 오셨습니다. 지금도 야위어진 육신으로 자식들의 반찬꺼리를 만들고 계십니다. 쉬엄쉬엄, 하셨으면 하는 자식들의 바람도 있고 해서 말씀 드리지만, 혼구녕 납니다. 당신께서 해 오신 익숙함이 있기에 가당치 않으신 모양입니다.
여름이라 주기적으로 입원하십니다. 전번 입원해 계실 때 몸의 기운이 조금 올라오자마자, 조퇴를 하시곤, 고추밭으로 달려가셨습니다. 우격다짐으로 홀로 만사를 정리해 놓으시고, 다시 입원하여 앓아 누우셨습니다. 이 번 입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땡볕이 내리쬐는 현장에서 탈이 나신 것입니다. 특히나, 워낙에 음식 드시는 것을 귀찮아 하셔서 더욱 야위어 갑니다. 이런 와중에도 여름작물이, 겨울김장배추가 걱정이 되신다 합니다. 경제논리로 따지자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버리겠죠, 그러나 엄니의 숭고한 삶을 어찌 경제논리로만 해석할 수 있을까요? 하루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는 엄니의 모습이 짠 할 뿐입니다.
내 엄니는 해방 전의 태생이십니다. 해서, 교육이란 것은 먼발치의 부러움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못 다한 원을 자식들에게 만큼은 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젊음과 함께 당신의 평생을, 일생을, 자식만을 위해서, 여한 없이 열의와 열정을 다하셨을 겁니다.
엄니의 노고와 뜨거운 열의와 열정에 준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지역사회활동가, 밥상차리는농사꾼 김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