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효성(孝誠)에 감동한 아빠
- 작성일
- 2012.05.29 11:54
- 등록자
- 이형문
- 조회수
- 1651
# 이 이야기는 필자가 중국인 저자 “탄줘잉”의 책(김명은 옮김) 중에서 읽고 다음에 내용 한 가지를 옮겨봅니다.
우리 아빠는 얇은 박봉인 월급생활로 일곱 식구가 근근이 살아갔으나 늘 낙천적이며 약간 벗겨진 머리를 감추려고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입에는 항상 옥(玉)으로 만든 파이프를 물고 다녔습니다. 그 파이프는 송(宋)나라 때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보(家寶)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애장품 1호”로 꼽고 밥을 구걸하더라도 파이프만은 절대 팔지 않고 애지중지했습니다. 아버지는 장남인 나에게만은 엄하셨지만 무조건 화를 내거나 혼내신 적은 없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 책상 서류를 뜯어 종이비행기를 접은 적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몇 마디 혼내고는 나가 놀라고 했습니다. 그런 개구쟁이 아들이 중국 최고의 명문 베이징 대학 (北京大學)에 합격을 하자 아버지는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다가, 웃다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보세요, 우리 아이가 베이징대학에 합격했어요!” 이웃은 축하 인사를 건넸고,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입학 등록금 납기일이 코앞에 다가와 대학진학을 포기하기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대지(大地)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더니 비에 젖은 옷을 털지도 않은 채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품속에서 돈 뭉치를 꺼내셨습니다. 집안 형편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거액이었습니다.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빠에게 물었습니다.“아빠 이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해 오셨어요? 그건 너가 신경 쓸 것 없다. 너는 대학에 가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그러자 아들은 그럼 아빠 파이프는요? 대대손손 내려온 파이프가 그토록 애지중지해 한 시도 떼어놓지 않던 옥 파이프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눈치 챈 것입니다. 아버지는 어색하게 씩 웃더니 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하기를 “그까짓 파이프가 뭐 대수냐?”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원하는 회사에 취직이 되고 나중에 20년 후에는 그 회사 사장이 됐습니다. 아버지의 여든 번째 생일을 맞았으나 맏이인 아들이 오지 않아 안달을 하던 때 아들이 문으로 들어서자 “아빠에게 달려가 생신 축하드려요“라며 작은 상자하나를 선물했습니다. 아빠가 받아 특유의 웃음을 웃으면서 상자가 여러 겹 싸여진 것을 벗기고 또 벗기고 나니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 개의 포장된 상자를 열고난 뒤에 나온 것을 보더니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손에 든 파이프를 꼭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눈을 꼭 감으셨습니다. 이럴 수가! 하며 대경실색하며 어떻게 가져왔는가를 내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그 파이프를 찾아 중국 큰 고물상을 다 뒤진 끝에 다시 찾아 값을 치르고 가져 온 것입니다. 눈물은 마치 아버지가 보내온 고난의 세월처럼 하염없이 이어 졌습니다. 그저 아버지를 따라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파이프는 내가 물려받았습니다. 아빠는 담배도 피우시지 않았지만 그 옥 파이프를 입에 물고 사셨습니다. 아버지의 체취를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보물 제1호였습니다. 자식으로 효성이 지극했던 탓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추억의 물건”이 있습니다. 그 물건은 지난 삶을 말해줍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보물이 되는 물건은 시간이 지나도 버리지 못합니다. 물건 속에 추억이 되살아나고 추억이 현재를 밝게 비춥니다. 추억에 담긴 물건 하나쯤 소중히 간직하여 보십시오.
우리 아빠는 얇은 박봉인 월급생활로 일곱 식구가 근근이 살아갔으나 늘 낙천적이며 약간 벗겨진 머리를 감추려고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입에는 항상 옥(玉)으로 만든 파이프를 물고 다녔습니다. 그 파이프는 송(宋)나라 때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보(家寶)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애장품 1호”로 꼽고 밥을 구걸하더라도 파이프만은 절대 팔지 않고 애지중지했습니다. 아버지는 장남인 나에게만은 엄하셨지만 무조건 화를 내거나 혼내신 적은 없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 책상 서류를 뜯어 종이비행기를 접은 적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몇 마디 혼내고는 나가 놀라고 했습니다. 그런 개구쟁이 아들이 중국 최고의 명문 베이징 대학 (北京大學)에 합격을 하자 아버지는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다가, 웃다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보세요, 우리 아이가 베이징대학에 합격했어요!” 이웃은 축하 인사를 건넸고,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입학 등록금 납기일이 코앞에 다가와 대학진학을 포기하기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대지(大地)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더니 비에 젖은 옷을 털지도 않은 채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품속에서 돈 뭉치를 꺼내셨습니다. 집안 형편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거액이었습니다.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빠에게 물었습니다.“아빠 이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해 오셨어요? 그건 너가 신경 쓸 것 없다. 너는 대학에 가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그러자 아들은 그럼 아빠 파이프는요? 대대손손 내려온 파이프가 그토록 애지중지해 한 시도 떼어놓지 않던 옥 파이프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눈치 챈 것입니다. 아버지는 어색하게 씩 웃더니 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하기를 “그까짓 파이프가 뭐 대수냐?”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원하는 회사에 취직이 되고 나중에 20년 후에는 그 회사 사장이 됐습니다. 아버지의 여든 번째 생일을 맞았으나 맏이인 아들이 오지 않아 안달을 하던 때 아들이 문으로 들어서자 “아빠에게 달려가 생신 축하드려요“라며 작은 상자하나를 선물했습니다. 아빠가 받아 특유의 웃음을 웃으면서 상자가 여러 겹 싸여진 것을 벗기고 또 벗기고 나니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 개의 포장된 상자를 열고난 뒤에 나온 것을 보더니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손에 든 파이프를 꼭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눈을 꼭 감으셨습니다. 이럴 수가! 하며 대경실색하며 어떻게 가져왔는가를 내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그 파이프를 찾아 중국 큰 고물상을 다 뒤진 끝에 다시 찾아 값을 치르고 가져 온 것입니다. 눈물은 마치 아버지가 보내온 고난의 세월처럼 하염없이 이어 졌습니다. 그저 아버지를 따라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파이프는 내가 물려받았습니다. 아빠는 담배도 피우시지 않았지만 그 옥 파이프를 입에 물고 사셨습니다. 아버지의 체취를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보물 제1호였습니다. 자식으로 효성이 지극했던 탓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추억의 물건”이 있습니다. 그 물건은 지난 삶을 말해줍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보물이 되는 물건은 시간이 지나도 버리지 못합니다. 물건 속에 추억이 되살아나고 추억이 현재를 밝게 비춥니다. 추억에 담긴 물건 하나쯤 소중히 간직하여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