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인생(人生) 길
- 작성일
- 2011.06.27 09:57
- 등록자
- 이형문
- 조회수
- 1753
이 글을 쓰는 얼마 전 내 생애(生涯)에 가장 아픈 슬펐던 일은 형님을 79세로 떠나보내면서 통곡했던 기억을 해 봅니다.
인간이 한 세상 태어났다가 죽는 건 당연지사이나 다시는 기약 없이 만날 수 없는 머나 먼 기억 속으로 가신 그 모습만이 지금도 아련히 보일 뿐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Fortune and misfortune)을 주관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훌륭하게 사는 길인가? 를 이미 가르쳐 놓았지만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은 그 길을 모르고 사는 동안 내 것이라는 집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욕(邪慾)의 울타리에서 헤매다 죄(罪)라는 엄청난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사는 동안 그 집착을 다 놓아 버리고 나면 그것이 진정한 내 마음이 될 터인데 우리 어리석은 인간은 그러지 못합니다.
실상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사는 동안 빌려주신 것 뿐 인데 왜? 우리 인간들은 사욕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늘도 생사고락(生死苦樂)의 구덕에서 허덕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언제나 죽어 없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한 때 천하가 제 것인 것처럼 날뛰던 전두환도 15층짜리 빌딩 속에 만원 지폐다발을 가득 쌓아두고 살던 이도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꼼짝없이 두 손 다 들고 어김없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이 엄숙한 죽음 앞에서 언젠가는 당연히 나에게도 온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사는 동안 남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는 짓만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악(惡)한 일만 저지르고 살다가 저승에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사자가 이르기를 이 자는 부모에게 아주 불효하고 남의 등을 쳐 혼자만 잘 살고 스승과 어른을 공경치 않은 자입니다.
이 때 염라대왕은 네가 인간 세상에 있을 때 늙고 허리가 구부정한 지팡이로 걸어가는 병든 노인을 보지 못했는가? 그런 노인은 수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그럼 그 노인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 모습이 될 것 이로구나라고 느껴보지 못했던가?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그럼 병원에 병석에서 신음하며 일어나지도 못하고 뒹굴며 아픔을 호소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가?
예.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게으르고 어리석은 탓에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럼 사람이 죽은 뒤 썩어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예. 그런 시체는 많이 보았습니다.
넌 그런 걸 보고도 어찌 깨닫지 못했느냐? 그렇다면 네가 그 모습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다면 네가 한번 그 모습으로 돌아가 그 벌을 한번 받아 보아라.
그 말이 떨어지자 사자가 끌고 가서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 던져 버렸습니다.
인간은 한 세상을 사는 동안 너무나 짧은 한 생애 속에서 살아 있는 한 좋은 생각 좋은 일하기에도 바쁜 나날입니다.
이 소중한 인생을 남에게 욕먹는 짓 하지 말고 남몰래 좋은 일로 덕(德) 쌓아 가기에도 바쁜 나날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길은 마음이 부자면 부자가 되고 없는 돈 벌려고 고민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저 자기 분복대로 살면 그만이지요.
한번 생각해 보면 어린 아이 때 뭔지도 모르고 자랐고 스무 살 때에는 아기자기했고 서른 살 때에는 눈 코 뜰 새 없이 살았고 마흔 줄엔 부부가 서로 싫었지만 자식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았고 오십 줄엔 서로가 가여워서 산다고 했으며 육십이 넘으니 이젠 고마워서 살고 일흔이 넘으니 서로 등 긁어주는 맛에 산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철모르고 살던 때부터 한 평생 동안을 돌이켜 보면 잠깐인 세월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결혼한지가 어언 내년이면 50해를 맞는 금혼식의 해가 됩니다. 나이가 많이 들면 마음도 함께 늙어 버리는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육신은 차츰 차츰 기력은 없어져도 정신만은 새로운 가지에서 새순이 돋아나듯 다른 세계를 향하여 자꾸 자꾸 무한히 뻗어 오르고 싶은 심정으로 나타남은 어쩐 일일까요?
머리 속에 정체되어 새로워지지 않는 낡은 지성은 나를 점점 무력하게 하고 체념하자니 내 남은 날이 너무 허망하고 포기하자니 내 남은 날이 싫다하여 하던 일 접어두고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것을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 대한 의욕이나 느낌은 더욱 진하게 가슴에 와 머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꿈을 먹고 산다거나 추억을 먹고 산다지만 난 그런 것이 싫습니다.
사는 날까지 움직이고 글 쓰고 여행하며 멋있게 사는 날까지 열심히 내 하고자 하는 일 다 해 보면서 살다가 어느 날 그냥 조용히 아내와 손잡고 자식들에 폐 끼치지 않고 장례치를 몇 푼만 남겨두고 갔으면 하는 솔직한 지금의 생각이지요.
심수무성(深水無聲).....깊은 물은 물소리가 나질 않고,
정수유심(靜水流深)......고요한 물은 깊이 흐른다고 했습니다.
벼가 익으면 고개 숙이듯 인간이 살아가다보면 만고풍상(萬苦風霜)(all kinds of hardships and privations)을 다 겪는 속에 "아주 잘 익은 사과(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칠십을 이순(耳順)의 나이라고 한다면 깊고, 고요한 물과 같이 세상을 너무 달관돼 겸허(謙虛)하게 받아들이는 때이지만,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 노쇠한 시기가 됩니다. 날이 갈수록 내 안에 숨겨진 욕망의 파도는 더욱 거센 물결로 일렁이지만. 처참하게 부서져 깨어질 줄 알면서도 미련을 홀로 잠재울 수 뿐 없는 기력으로 용기를 잃고 칠십대임을 실감합니다. 창가에 투명하게 빛나는 햇살도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코끝의 라이락 향내도 지금은 그 모두가 다 내가 풀어야 할 유혹의 숙제입니다. 그것은 마치 끝없는 내 마음의 쇠잔한 반란임을 창가에 서서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며 내 자신의 걸어온 삶을 위로하면서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어느 땐 내가 늘 좋아하여 부르는 반주기의 마이크를 잡고, 목청껏 불러 보기도 하고 집사람과 함께 즐겨 듣던 애창곡 조용필의 "창 밖의 여자"라든지 "그 겨울의 찻집" 최성수의 "해후" 곡을 듣거나 통기타를 듣기도 하고 어느 땐가는 그 옛날 연인이었던 그 한 여인의 생각을 떠 올려 보기도 합니다. 내 자신이 워낙 낙천적이고, 놀기를 무척 즐겼던 인간이라 술좌석도 잊혀질 수 없는 기억으로 떠오릅니다.
이젠, 먼 세상으로 가버린 그런 사람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이들도 정말 많아진 나이가 되고 보니 사소한 것까지도 그리움이 되어 아쉬움으로나 슬픈 기억으로 남아지게 됩니다. 이젠, 내가 꿈을 먹고 사는 게 아니라 꿈을 만들면서 사랑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멋을 부려 넥타이로 젊음을 표시 해 보기도 해야겠습니다. 과연, 칠십대란 흔들리는 갈대 바람과 같아 쉽게 휘 늘어지지만 마음은 끝없이 뻗어 오르는 새순의 가지가 되고 싶습니다. 가까웠던 몇몇 친구를 가까운 곳으로 한 둘이라도 불러들여 여생을 근처에서 웃음꽃 피우며 지내고픈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막힘도 큰 바램도 없이 지는 남 태평양 황혼 먼발치 언덕을 사랑하는 내 아내와 두 손 꼭 잡고 웃으며 함께 넘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