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삶이 남긴 추억(追憶)의 수첩
- 작성일
- 2011.03.02 17:23
- 등록자
- 이형문
- 조회수
- 1651
아내가 오늘은 지난 수첩들이나 필요 없는 책장 속에 메모지등 좀 쑥쑥한 것 들을 정리하면 어떻겠냐는 말에 그러마하고 쉽게 대답하고 막상 어질어진 것들을 바닥에 일단 다 들어 내 놓다보니 이것 정말 보통 큰 일거리가 아님을 생각했습니다.
포켓에 넣고 다니는 작은 수첩만도 해년마다 바꾸다보니 20여개나 되고 책 부피 정도의 일기장 같은 나의 마음이 흠뻑 담겨져 있는 중요한 내용의 글이나 메모용 보물이 듬뿍 담긴 것들이 30여개 기타 지난 세월에 무역업을 하며 새로 바꾼 여권만도 십여 개나 돼 그 속을 한번 열어보니 지구상에 16개국이나 돌아다닌 출입국 도장이 빽빽한데 그걸 다 어찌 버릴 수도 없고 내가 이사를 가거나 심지어 이민 갈 때도 함께 딸려 다닌 가장 아끼는 내 지난 과거의 추억이 다 담긴 것들인데 이제와 막상 정리도 하고 그냥 남겨두거나 버릴 것을 구별해보려고 하니 앞이 캄캄합니다.
진실로 나에게는 살아온 흔적의 역사이며 추억이고 보람이며 보물 같은 것 들 인데 막상 버리고 정리해야 한다는 결정을 하고나니 앞이 꽉 막힙니다.
다시 아내에게 말하기를 정리하는 것 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보류하겠다고 말하니 집 사람은 아니 여보! 다 늙어 죽을 때 그걸 무덤까지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중하다고 망설이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막상 꾀를 내어 생각해 보기를 자식들에게나 나누어줄까? 아니면 왠만한 것은 모조리 들어내 불 질러 버릴까? 그렇게까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일도 못할 것 같고 저것도 못 버릴 것 같았던 몇 일후 그 중에 수첩 십여 개만 우선 들어내 지난날의 수첩 속에 적혀 있는 것을 들춰 내보니 친지나 친척 그리고 사회에서 알았던 분들 중에 이젠 고인이 돼 버린 분들도 많고 전화 번호 등등 머리 속에 스크린처럼 지난 일들의 추억이 아련히 빠짐없이 떠올라 혹여나 하고 한번 핸드폰을 들고 전화해 보니 90%가 연결되지 않는 전화번호들이었습니다.
아! 지금쯤 이 분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아직 살아 있을까? 국제전화까지 다 해봤으나 전화는 받는데 고인이 된 분의 자식이거나 손주들이었습니다.
그 때 난 홀로 아! 그렇게 세월이 많이 지났단 말인가? 라고 느끼면서 거울 앞에서 봤습니다.
정말 나이는 속이지 못하나 봅니다.
얼굴에 검버섯이나 잔주름이 증명합니다.
그나마 아직 아픈데 없이 아내와 손잡고 산을 오르내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의 해 볼 뿐입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마지막 꼭 다 버리고 가야 할 것은 무엇이며 정말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법정스님 같은 분처럼 마음을 다 비우고 떠나야 한다는 "무소유"의 삶은 과연 살아가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어려운 해답입니다.
나만의 인생 속에 깊이 저장된 값진 그 추억들이 지워질 때 너무나 마음이 아파질것 같습니다.
그것은 지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지요.
그와 같은 아름다운 골동품이지만 이젠 꼭 버려야 할 것과 버릴 수없는 것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지울 수 없는 사람이나 인연들 그리고 사랑했던 모든 이들 그 추억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아련하게 떠오르는 날 나도 조용히 먼 곳으로 떠날 런지 모를 일입니다.
인생살이 누구나 정말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 라고 몇 번이나 생각해 보나 결국은 생을 마감할 때 이 세상 모든 걸 다 잊고 딱 눈 감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처량한 새의 슬픈 곡을 연상 해 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