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통(苦痛)과 행(幸)과 불행 (不幸)
- 작성일
- 2010.07.22 10:41
- 등록자
- 이형문
- 조회수
- 1355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오히려 그 더러움을 떨치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사람도 한 세상을 살아가며 고난과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인생의 참의미나 영혼의 자유로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땀과 피와 눈물이 함께 섞여 있어야 합니다.
그 고통은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위한 디딤돌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참고 견딘다는 것, 그것은 곧 힘 있는 큰 사람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행복의 씨앗이 됩니다.
유태인의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인데 말썽꾸러기 아들을 하루는 불러 앉혀놓고 말하기를 “네가 잘못은 저지를 때마다 망치와 못을 줄 터이니 벽에다 못을 반쯤만 박아 두어라” 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 벽면은 박을 곳이 없이 못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때 아들은 크게 잘못을 뉘우치게 되어 어머니 앞에 눈물을 흘리자, 어머니는 그러면 박아둔 못을 원 상태로 다 뽑으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못을 뺀 자리에는 못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흔적은 좋은 자국보다도 온갖 추악함과 잘못한 것들이 오히려 뚜렷하게 기억에 남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세상사입니다.
한 세상을 살다보면, 사람은 몇 번씩 환경에 따라 성격이 바뀌어 지지만, 흔적은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고 따라 다닙니다.
거기에서 자신이 과거를 되돌아보며 뉘우치고, 참회하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업 (業)을 짓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의 앞날이 행과 불행으로 구분됩니다. 그러니 나의 후대 자손을 위해서라도 선행(善行)의 덕(德)을 많이 쌓아 둬야 합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사후 천국이나 극락정토 하기 위해서만 믿음을 갖는 것은 "삶의 도피행위"일 뿐 진실한 신앙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연불하면서 젯밥에만 눈이 멀어 남을 울리고, 사기 치며, 사리사욕에만 급급할 때 그 죄(罪)는 절대로 사해 질 수 없습니다.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은 사고하는 특권이 부여된 갈대와 같다"고 했습니다.
또 독일의 시인 쉴러는
나무는 수백 년 자라도 하늘에 닿을 수 없지만, 인간은 100년도 못사는데 정신으로 닿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먹기에 따라 선행과 불행이 달라 질 수 있습니다.
예수나 부처를 진실로 믿고 따르려는 것이지 거기에 미쳐 광신자가 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꿈의 뿌리는 정신이며 그 정신은 영원합니다.
‘개팔자 상팔자’ 란 의미는
배불리만 먹으면 더 이상 욕심이 없기에 꿈이 없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이다’ 는 말은
사람답게 사는 꿈을 꾸는 정신으로 살아가자는 뜻입니다.
인간의 행(幸)과 불행(不幸)은 상대적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행과 불행이 갈라집니다.
지혜는 겸손과 긍정적인 사고에서 나옵니다.
그 실체는 물론 없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획을 세우고, 열 번의 기도보다 한번 좋은 일을 남 몰래 실천하는 것이 더 값진 행동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꿈을 이룰 수 있는 커다란 축복이요, 행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