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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치마 - 유헌

작성일
2016.03.29 12:39
등록자
유헌
조회수
1047
 
 긴 겨울이 가고 새봄이 얼굴을 내민다. 희끗희끗한 잔설이 꼬리를 감춘 언덕 너머 산모롱이에 파릇한 새움이 돋고 갈매기 등을 타고 건너온 바람은 물오른 가지에 앉아 여유를 부린다.  

 구강포의 봄은 저 멀리 마량포구에서 불어오는 갯바람을 앞세우고 만덕산 자락에 도착하나 보다. 백련사 아래 동백 군락지에는 붉디붉은 산다화 피고지고 숲속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는 직박구리는 아침부터 숨이 차다. 
 풀빛이 차오르는 이른 봄날, 강진 도암면 만덕산 허리를 감고 도는 백련사 샛길을 따라 다산초당으로 향한다. 동글동글 나무를 잘라 만든 통나무 계단을 10여분 오르니 고갯마루가 나온다.  

 200여 년 전, 오늘 같은 이런 봄날에 다산선생도 지금의 이 오솔길을 걸으며 사색의 시간을 보냈을까. 당대 최고의 명승 혜장선사와 함께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이어주는 이 산등성이 길을 오가며 세상을 얘기하고 선문답을 주고받았을까. 다산선생은 이곳 언덕에 올라 숨을 고른 후 초당으로 향하는 내리막을 길벗 삼아 하루하루 걷는 여유를 즐겼을지도 모른다.  

 고갯길 굴참나무 가지사이로 하얀 구름이 흘러간다. 문득 “요즘 사람 옛적 달 못 보았으나, 요즘 달 옛 사람을 비추었으리. 옛 사람 요즘 사람 모두 흐르는 물 같으나, 달 보는 그 마음은 모두 같으리” 라는 이태백의 칠언시 ‘대주문월對酒問月’의 앞머리가 떠올랐다. 나는 200년 전 저 구름 못 보았으나 지금의 저 구름은 혹시 다산선생과 만난 적 있지 않았을까. 대시인의 말처럼 구름을 바라보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을까. 나는 감히 다산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있었다.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자생하는 작설 찻잎에 길손의 시선이 머문다. 짙은 남빛을 띤 붉은색, 자색紫色이다. 참새의 혀를 닮아 작설차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초당 주변에 차나무를 심고 녹찻바람을 즐겼을 다산을 생각한다. 다산의 깊은 마음에 언감생심 다가갈 수는 없다.

그러나 절해고도나 다름없는 강진 땅에 귀양 가 있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적막한 세월을 보냈을 홍씨부인의 마음을, 역사가 기록하는 사실史實을 통해 조금은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홍씨부인은 아마 자색姿色을 갖춘 여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다홍치마 곱게 차려입고 한 살 아래의 청년 다산과 봄이 오는 길목에서 혼례를 치른다.

세월은 흘러 결혼생활 25년이 되던 해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다산은 귀양길에 오르고, 홍씨부인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어쩌면 살아서 만나지 못할 유배지의 남편을 기다리다 병이 들었을 것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강변의 외딴집 초가, 시름에 잠겨 있을 홍씨부인을 생각해 보라. 주변은 빈 가슴을 파고드는 바람소리 뿐 흐르는 물소리도 숨을 죽인 듯 적막에 쌓여 있었을 것이다. 그 차가운 어둠을 뚫고 때마침 강 너머에서 초승달이 떠오른다. 달빛은 빨려들 듯 봉창으로 스며들고 여인은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어 버선발로 마당으로 나선다.  
 그리고 천리 길 남쪽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몇 발자국 다가간다. “여보오~” 짧지만 길게 외마디 소리를 외치며 그대로 빈 뜰에 쓰러진다. 그때 강물은 남으로 흐르고 흘러 만덕산 아래 구강포구에 이른다. 간절한 부부의 두 마음은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져 뜨겁게 해후한다.  

 그로부터 며칠 후 조선 순조 1810년 초가을, 다산 선생의 전남 강진 유배지에 부인 홍씨가 시집올 때 입었던 빛바랜 노을색 비단치마가 인편으로 도착한다. 나는 그 순간을 『노을치마』라는 4수로 된 연시조를 지어 발표한 적이 있다.  
 
봉창에 달그림자 열브스레 차오르고
여유당 시린 눈빛 버선발로 서성일 때
상사련 구듭치는 강, 구강포 가슴 섞네

마재 너머 강진 땅 짭조름한 눈물걸음
촉초근한 눈시울은 한 쌍의 학이 되어
만덕산 된비알 넘고 두물머리 둥지트네

깁고 엮은 애틋한 정 신혼의 단꿈 어린
병든 아내 낡은 치마 초당에 전해지니
천리 길 적시는 울음, 하피첩 되었다네

세월은 가량없어 붉은 천 바랬으나
귤동 마을 대숲마다 고샅고샅 어귀마다
노을빛 치맛자락에, 얼룩져 타는 속울음
(월간문학 2011년 6월호)
 
다산은 병든 아내가 보내온 낡은 치마를 정성스럽게 재단하여 자그만 서첩을 만들고 아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적어 고향으로 보낸다. 유배지에서 아버지가 자식에게 보낸 그 서첩을 색이 바래 노을처럼 변한 치마에 적었다고 해서 ‘하피첩’이라고 부른다. 다산은 그때의 심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를 보내왔네. 천리 먼 곳에서 마음을 담아 보냈구나. 오랜 세월에 붉은 빛은 바랬는데, 늙은 내 모습 같아 처량하구나. 재단하여 작은 서첩을 만드니......’ 

 다산초당으로 향하는 언덕을 넘으며 200년 전 한 여인의 애틋한 마음을 읽는다. 산 높고 물 선 귀양지에서 하릴없는 일생을 보내고 있을 남편에게 시집올 때 입었던 다홍치마를 보낸 깊은 뜻은 무엇이었을까. 병이 들어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노을치마를 보냈을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한때나마 행복했던 신혼의 단꿈을 기억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남편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의 마음을 전하려 했음일까. 어떤 생각이었든 간에 백 마디 말보다는 훨씬 더 깊고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안타까운 표현이었으리라.  

요즘 부부간에 툭하면 큰소리로 다투고 심지어는 아예 갈라서는 경우까지 있다. 오죽하면 정부에서 ‘부부의 날’이라는 기념일까지 만들었을까. ‘부부의 날’은 가정의 달 5월에 둘이 하나 된다는 의미의 5월 21일로 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부부간의 사랑을 어찌 법으로 묶을 수 있겠는가. 결국은 서로의 마음이다. 200년 전 다산선생과 홍씨부인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를 떠올리면, 지금 내 곁의 아내와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담당자
문화관광실 관광진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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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2024.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