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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여행후기

행복한 강진의 여행... 문화해설사 이을미님과 2009-12-22-23

작성일
2009.12.26 00:54
등록자
이석수
조회수
1355
2009년 12월 22일 처음 강진땅에 도착했다. 23일 점심 시간 이후 강진땅을 떠나기시작했다. 부산에서 강진을 찾은 나의 일행은 35명이다. 관광기사님 빼고. 

몇 년간 20kg 탐진참미를 먹어 왔기에 늘 친근하게 느꼈다. 그러나 막연한 친근함이 문화해설사 이을미님을 만나면서 어두운 방안에 촛불을 켠듯 친근함이 더욱 선명했다.

그동안의 경험에 의지해 강진을 주관적으로만 볼 것을 해설을 들으며 보니 그분의 인생만큼 깊이 있게 강진을 본 것이다. 친절과 정성을 보았다. 

사적 68호고려청자도요지에서 세계 도자사에 큰 영향을 끼친 청자를 직접볼 수 있어 좋았고, 나의 조상님들이 고려정부의 관리로 500년 정도 지냈기 때문에 청자를 보면서 혹시 나의 조상님들도 이 강진의 청자를 이용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일본에 건너간 고려불화에 그려진 궁궐의 그림에서 강진의 기와가 그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위사의 불화에 그려진 부처님의 옷에 그려진 원형 무늬에서 고려불화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조선초기의 절이라고 해설사님이 설명하셨지만 불화의 기법엔 고려의 기법이 그대로 전수된 것을 확인했다.

사의재의 추어탕이 환상적이었다. 음식을 만드시는 분의 정성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옆은 원시시대의 공동체가 있었다면 물을 중심으로 평야에 존재했을 것인데 사의재 옆의 우물과 빨래터는 나의 이 기대에 걸맞게 앉아 있었다. 아직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는 것이 강진과 한국 인류사의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지....감사할 따름이다.
천재학자 다산의 초당에서 당대 지식인들의 교류가 이런 초라한 곳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서민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다산초당이 있어 국민이 찾을 수 있게 해준 강진군청의 관계자분과 보존을 위해 추렴하신 분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다른 나라 위인의 생가나 문학관등을 부러워만 하지 않고 우리나라에도 내세울 위인의 흔적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심기를 추스려서 직장에서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수있는 계기로 삼게되었다.

무위사의 건물은 법당안이 굉장히 넓었다. 그런데 기둥이 없다. 조선초에 기둥 없이 이렇게 넓은 공간을 목재 건축에서 마련한다는 것은 기적의 공법이 아닐까? 지금까지 쓰러지지 않고 보존되는 기초, 완벽한 부재들의 어울림. 이런 놀라운 공법은 고려청자요지청자 판매하는 매장에서도 발견하였다. 현대식 공법을 써서 천장에 빛이 들어오고 바깥벽도 유리를 써서 밝게 하였으며 넓은 매장에 기둥이 하나 없이 힘을 분산시킨 것을 감상하였다. 건물 둘레는 처마를 내어서 비를 피하며 동선을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강진의 미항. 바닷가에 LED가로등과 야외 음악당, 그리고 넓은 주차장 여행자가 늘 마음 속으로 생각하던 이상이 현실로 드러난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없었다. 바닷가 부두에 이런 최첨단 시설을 무리없이 설치 하여 운영하고 있는 강진군이 부럽기도하지만 고맙기 그지없다. 부산시 관계자분들도 이런 시설을 벤치마킹하여 대변항에 친수공간을 널려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푸념을 안 할려고 했지만...
이을미 해설사님의 지식, 지혜, 사랑으로 인해 강진군의 공무원들께서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짧은 여행이지만 50년이상 갈 수 있는 인상적인 여행 이었다.
담당자
문화관광실 관광진흥팀
담당전화번호
061-430-3313
최종업데이트
202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