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
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 1903. 1. 16 ~ 1950. 9. 29)은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11번지에서 부친 김종호와 모친 김경무 사이에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5년 3월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상경하여 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수학한 후 휘문의숙에 진학하였다. 휘문의숙 재학시절이던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영랑은 자신의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겨 넣고 강진에 내려와 독립운동(강진 4․4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 등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靑山學院)에서 수학한 그는 용아 박용철 등과 친교를 맺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 후에는 시 창작활동에 몰두하였다. 영랑은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당대 최고의 시인과 더불어 우리 현대시의 새 장을 열었다. 1934년 4월 『문학』지 제3호에 불후의 명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하였으며, 1935년 『영랑시집』을, 1949년에는 『영랑시선』을 출간하였다. 영랑은 조국 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및 삭발령을 거부한 채 흠결 없는 대조선인으로 의롭게 살았다. 광복 후 신생 정부에 참여해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던 그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상당하여 9월 29일 서울 자택에서 4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영랑은 생애 86편의 시를 남겼으며, 정부에서 2008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한편, 현재의 영랑생가는 1948년 선생이 서울로 이사한 후 몇 차례 전매되었으나 1985년 12월 강진군이 매입, 1986년 2월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10월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