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세이) 차분히 세월을 낚으는 가우도 힐링

작성일
2015.06.16 13:47
등록자
이홍규
조회수
845
황금빛 보리밭을 봄바람이 스쳐가고, 대구면 저두마을 갯벌엔 물살이 들어와 회색의 살결을 덮는다. 출렁다리 입구엔 파도가 넘실거리며, 한적한 아침의 적막함을 달래며, 반갑게 맞이한다.

주말이 아닌 평일 이라서 그런지 출렁다리를 혼자서, 파도소리와 갈매기만이 바다를 지키고 있어, 혼자만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차분히 출렁다리를 건너 가우도에 도착해,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활짝핀 찔레, 진달래, 민들레꽃 주변에서 벌과 나비가 마지막 가는 봄을 아쉬워 하고 있다. 가우도 전체를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을 따라 걸어가면, 숲과 바다의 맑은 공기와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몸과 마음이 상쾌하게 된다.

산책길을 조금 걸어가니 낚시공원 푯말이 말없이 낮선 방문객을 맞이한다. 요즘은 보리가 익어갈 무렵 이라서 숭어가 많이 잡혀, 수많은 강태공(姜太公)들을 부르고 있다. 세월을 낚으며 때를 기다렸던, 강태공의 느긋함을 모방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가방에서 낚시대를 꺼내 새우를 바늘에 꿰어 푸른 물결위에 힘차게 던지니, 낚시 바늘이 밑으로 가라 앉으며,물결이 출렁거린다. 가우도 건너편 신기마을 선착장엔 어부들이 그물을 깃고, 먼 바다에 나갔던 배들이 돌아와 잡은 물고기를 옮기고 있다.

오월의 햇살은 한여름처럼 뜨거워서, 밀짚모자를 쓰고, 긴옷을 입고, 최대한 피부의 노출을 가렸다. 강태공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긴 침묵 속에 바다를 응시(凝視)하는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지루함이 느껴진다. 마음속엔 팔뚝만한 보리 숭어가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느긋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세월을 낚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서, 마음의 수양을 더 해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을 애써서 달랜다.

마음을 비우는 다짐을 하니,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외로운 바닷가에 오직 홀로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 이것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로, 득도(得道)를 하기위한 전단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지그시 감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암흑이며, 고요 속에 물결소리, 바람소리만 귓전에 들려온다.

눈을 뜨고 갈증을 해결하고자 물 한 모금 마시는데, 낚시줄을 누군가 당기고 있었다. 묵직하게 당기는 힘이 손을 짜릿하게 한다. 서서히 낚시대 릴을 감아올리며, 조심스럽게 끌어당기니 팔뚝만한 숭어가 강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오늘이 운명의 날인 줄 알았는지, 아니면 갑작스럽게 잡힌 것이 억울한 것인지,땅으로 올라와서도 발버둥을 치고 있다.

숭어를 바구니에 담고, 이마에 맺힌 땀을 수건으로 닦으니, 한차례 전투를 치른 것처럼 온몸의 기운이 없다. 그래서 낚시꾼들이 바다를 찾아 짜릿한 전율을 느끼는 가보다. 가우도 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때를 잘 맞춰야 하는데, 그냥 무작정 낚시대를 드리웠지만, 뜻하지 않는 큰 행운을 낚았다.

다시금 낚시대를 드리우니, 바다엔 고요가 흐르고, 햇살이 중천에 떠올라 열기가 느껴진다. 숭어 한 마리에 안분지족(安分知足) 하지 않고, 과욕을 부려서 그런지, 더 이상 낚시대에 아무런 감각이 없고, 물결만 흘러갔다.

오늘은 충분히 세월과 큰 숭어를 낚았기 때문에, 낚시대를 걷어 올리고, 가방에 넣고 물고기 바구니를 들고 낚시공원을 나왔다.

진정한 강태공이 되기 위해서는, 차분하게 자연이 들려주는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내면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감정과 감성을 순화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는 방법이다. 일상의 복잡함과 무거움을 잠시 내려놓고 전남 강진의 가우도를 찾아 마음의 힐링을 적극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