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톤 트럭 안의 부부(夫婦)

작성일
2015.05.22 14:58
등록자
이형문
조회수
1885
4,5톤 트럭안의 부부(夫婦)
 
# 아래 글은 (주인공 심원섭, 이은자)씨의 목숨을 담보한 기사에 오른 실화 이야기임
 
화물트럭을 몰던 남편이 덜컥 중한 병에 걸렸다. 아내가 운전을 배워 서울~부산을 일주일에 3번씩 왕복. 신장병을 앓는 남편은 시속100km 트럭 속에서 하루 네 번 투석을 하고선 곪아 떨어진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차창을 타고 흘러내린다. 밤 11시 이은자(55)씨가 운전하는 4,5톤 트럭이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여주부근을 달린다. 이 여인은 몸이 아담해 운전을 한다기보다 운전대에 매달려가는 것 같다.
트럭이 차선을 바꾸자 운전석 뒤편에 매달린 링거팩이 흔들거린다. 남편 심원섭 씨가 누워서 복막 투석을 하고 있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트럭 속에서 투석은 30분 만에 끝났다.
 
10년 전부터 신장병을 앓고 있는 심씨는 하루 네 번씩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투석을 한다. 투석을 마치자마자 심씨가 코를 골며 잠들었다. 시끄럽지요? 하지만, 저 소리가 나한테는 생명의 소리예요. 살아있다는 증거걸랑요. 가끔 코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손을 뒤쪽으로 뻗어 남편의 손을 만져 본답니다. 곤해 잠든 남편, 고맙고 또 고맙다.
 
부부는 일주일에 세 번씩 서울과 부산을 왕복 수도 전 지역 공단에서 짐을 받아 부산지역에 내려놓고 부산에서 짐을 받아 서울로 간다. 원래는 남편이 혼자서 하는 일인데 5년 전부터 부부가 함께 다닌다. 렌터카, 택시, 버스 안 해본 운전이 없는 경력35년 베테랑 운전사인 남편은 1995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나아질 무렵 다시 심장병으로 6차례 수술을 받았고, 신장병까지 겹쳤다. 사업은 망가졌고, 고단한 병치레 끝에 자녀들과도 사이가 멀어졌다.
 
아들 둘, 딸 하나 가운데 막내아들(28)을 제외하고는 연락도 하지 않는다. 출가한 큰 딸과 아들에게는 더 이상 손 벌리기가 미안해 연락도 못해요. 저희들끼리 잘 살기 바랄뿐이지요.
 
아내는 혼자 한숨을 쉰다. 운전석 옆에서 남편 수발을 들던 아내가 드디어 팔을 걷어붙이고 2004년 아예 운전을 배웠다. 몸이 아픈 남편과 운전을 교대하기로 했다. 트럭이 안산공단에 들어서자 남편이 운전대를 잡았다. 좁고 복잡한 시내 길은 남편 심 씨가 하고, 고속도로 같은 쉬운 길은 아내 몫이다.
 
낮에는 지방에서 전날 밤 싣고 온 짐을 안산, 반월공단을 돌려 내려놓는다. 해질녘이 되면 쉬지도 않고, 지방으로 가져갈 물건을 싣는다. 저녁 경기도 안양에 있는 집에 눈 붙이러 잠시 집에 들릴 때면 남편은 집까지 걸어가기가 힘들다며 그냥 차 안에서 쉬겠다고 한다.
아내만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향한다. 이틀 만에 들어온 집은 온통 빨랫감과 설거지감으로 발 디딜 틈도 없다.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막내아들 뒤치닥꺼리도 엄마 몫이다.
 
집안 청소까지 마친 엄마는 무너지듯 쓰러진다. 좀 쉬었어? 밤 10시 짧은 단잠을 자고 돌아온 아내에게 무뚝뚝한 한마디다. 아내는 말없이 트럭에 시동을 건다. 밤12시 어느 새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접어들자 뒤에 누워있던 남편이 눈을 뜨며 라면이라도 먹고 가지고 한다. 충북 괴산휴게소에 도착, 주차장에 트럭을 세워놓고 남편이 트럭 옆에서 라면을 끓인다. 남편은 다른 사람이 끓인 라면은 먹지 못한다. 신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 특유의 입맛 때문이라고.....
 
라면으로 허기를 달랜 부부가 다시 트럭을 몬다. 새벽2시쯤 경부고속도로 칠곡 휴게소에 도착, 휴게소앞쪽에 차를 주차시킨 뒤 남편이 운전석 뒷편 남은 공간에 전기장판을 깔고 눕는다. 아내는 운전석에 나무 합판을 깐 뒤 잠을 청한다. 저쪽 공간이 조금 더 따뜻하고 편하긴 하지만, 한사람이 누워도 몸을 뒤척일 수 없을 만큼 좁다.
 
아내는 이렇게라도 함께 잘 수 있어 너무 좋다. 꼭 신혼 단칸방 같지 않아요? 남편 심 씨가 애써 웃는다. 새벽 4시 캄캄한 어둠 속에 트럭이 다시 출발한다. 새벽 6시전에 톨게이트를 통과해야 통행료 50%를 할인 받을 수 있다.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에서 구마고속도로로 바뀐다. 심 씨 부부가 이틀 동안 10여 차례 고속도로를 바꿔 타며 돌아다닌 거리는 1,200여km. 한 달 수입은 기름 값, 통행료 제외하고 350만원정도, 그 것도 일감이 없는 날이 더러 많이 있다. 트럭 할부금으로 매달 180만원 남편 약값으로 50만원이 들어가고, 정부에서 6개월마다 기름값 보조금 명목으로 150만원이 나오지만, 남편 약값 돈으로 생활하기에는 빠듯하다. 그래도 남편 몸이 조금 나아져 같이 다닐 수 있어서 행복이라면 행복이라고........ 가속 페달을 밟는 아내의 표정은 한 없이 밝다.
 
부부는 부마고속도로 김해 진례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길가에서 1시간 정도 쉰 다음 톨게이트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김해 공단에 이르자 남편이 다시 운전석에 앉아 짐을 부리고, 남해고속도로는 다시 아내 몫. 부산 녹산공단 해운대에서 남편이 또 운전대를 잡았다. 옆자리로 옮겨 앉은 아내는 쉬지 못한다. 몸 아픈 남편에 말도 붙이고, 팔도 주물러준다. 녹산공단과 해운대 등을 돌아다니며 포장지, 전선보호막, 철근 등을 내려주고, 다시 서울로 향한다.
서울로 올라가는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아침이 밝다. 피곤해도 자동차타고 여행 다니는 심정으로 일하지 뭐!! 일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진다고. 남편과 아내가 손을 꼭 쥐었다. 4,5톤 트럭 안의 부부의 서로 격려하는 손길은 따뜻하기만 하다.
 
부부 도우려는 마음만 받을게요. 40여 곳의 취재요청도 거절, 열심히 살 겁니다. 힘들지만, 그래도 따뜻한 세상입니다. 항상 이렇게 도움을 받고 사는 게 오히려 미안할 따름입니다. 이제 입장을 바꿔 남을 도아 주며 살았으면 해요.
 
신장병을 앓는 남편을 트럭에 태워 직접 운전대를 잡으며 전국을 누비는 부인의 사연을 담은 2015년 4월 8일자 4,5톤 트럭 안의 부부 기사의 값진 목숨을 담보한 실화가 발표되자 같은 업종에 일하는 트럭 운전사들은 파이팅을 외치며 지나가기도 한다지요. “대한민국은 아직 뜨겁다.”
(조선일보 주완종 기자 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