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한권 나 한권, 신나는 서점 나들이"

작성일
2009.09.05 03:00
등록자
이동선
조회수
1346
“엄마 한권 나 한권, 신나는 서점 나들이”

도서관장들이 말하는 ‘아이들 독서교육 이렇게’
전집은 형식·모양 같아 쉽게 싫증낼 수 있어
읽은 후엔 독후감보다 이야기 바꾸기 놀이를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관장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무슨 책을 어떻게 읽힐까? 각각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함께 크는 우리’ 공유선(40) 관장, 일산 ‘동화나라’ 최지현(39) 관장,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 김소희(39) 관장으로부터 들어봤다.

전집은 필수가 아니다
관장들은 한결같이 ‘전집을 사줘야 한다’는 집착부터 버리라고 말한다. 한번에 수십권짜리 전집을 사다주면 부모야 흐뭇하겠지만 아이는 부담감만 느낄 뿐이다. 김소희 관장은 “같은 판형과 형식으로 수십권을 계속 읽다 보면 아이는 금세 질려 버리므로 낱권으로 책을 사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전집 중에는 저자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거나 제대로 감수되지 못한 책들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서점 가기를 신나는 놀이로
전집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아이와 엄마가 함께 책을 고를 기회가 열린다.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책 읽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본 경험이 아이에게 자극이 되고, 한권씩 고르고 사들인 책에 아이가 애착을 가지기 때문이다. 최지현 관장은 아들이 15개월이었을 때부터 매주 한 번씩 어린이서점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아이가 서점가는 걸 나들이로 여기면서 책을 ‘신나는 놀이’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어린이도서관을 찾는 것도 좋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어린이도서관은 적은 예산으로 꾸려나가다 보니 좋은 책만을 엄선해 들여놓기 때문이다.

아이의 의견 존중해 골라야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를 때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학습만화나 ‘무서운게 딱 좋아’ 류의 공포물은 엄마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아이들이 빌려서라도 읽게 돼 있다. 김소희 관장도 딸 동아(10)가 공포물을 골라들자 아이에게 “어떻게 이런 책을 골랐냐”며 바로 쏘아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뒤 딸이 문제의 책을 친구로부터 빌려와 읽는 것을 보고 깨달았단다. 어떤 책은 하나의 또래문화이기 때문에 따돌림받고 싶지 않은 아이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읽게 된다는 것을. 김 관장은 “아이들의 문화를 먼저 인정해야 아이도 마음을 열어 엄마 말에 귀 기울인다”며 “엄마 한권 아이 한권 합의해 고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좋은 만화는 읽게 하자
만화의 경우 무조건 뜯어말리기보다 아이가 왜 만화를 읽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들이 만화 때문에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에 재미를 못 붙여서 만화를 읽기 때문이다. 공유선 관장은 “만화만 찾던 아이도 어느 시기가 되면 책을 읽게 된다”며 “일본 히로시마 원폭피해자들의 얘기를 다룬 ‘맨발의 개미’같은 좋은 만화는 읽어두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만화를 통해 아이가 특정한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 자연히 관련 책에 손이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고증도 안된 역사만화를 ‘선행학습’ 차원에서 읽는 것은 아이에게 오히려 해(害)가 된다는 설명이다.

독서를 즐거운 놀이로
세 관장 모두 아이가 독서를 즐거운 놀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것. 공유선 관장도 아이에게 매일 2권씩 책을 읽어주고 있다. 공 관장은 “엄마가 책을 읽어주면 아이는 독서를 ‘친근하고 즐거운 경험’으로 기억한다”며 “유아기뿐 아니라 초등학교 3~4학년 때까지 책을 읽어주면 좋다”고 말했다. 아이가 글을 깨쳤다고 ‘알아서 읽으라’고 책만 던져주거나 글씨를 잘 읽는 것에 연연하게 되면 아이는 ‘책=하기 싫은 공부’로 받아들인다.

산만한 아이라면 책을 읽어주기 전에 짤막한 옛이야기로 관심을 끌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아이들과 ‘이야기 바꾸기 놀이’를 해보면 좋다. 특히 아이가 또래들과 이야기 바꾸기를 할 경우 또래의 말과 글을 통해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받게 된다.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읽어주는 능력은 아이들에게 대단한 자신감을 준다.

김소희 관장은 “엄마들이 독후감 등 ‘결과물’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책과 멀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요즘 유행하는 ‘독서-토론-글쓰기’의 패턴만 강요하지 말고, 책을 읽은 후 그림이나 이야기 등 아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생각을 표현하게 하라는 것이다. 또 책을 읽은 후 엄마가 아이에게 ‘이 책은 너무 슬프지 않니?’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게 되지?’ 식으로 어른의 관점을 주입하면 아이에게 독서는 또 하나의 교과가 돼버린다. 김남인기자 kni@chosun.com 2006.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