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 미 콜로라도대 와이먼 교수 인터뷰

작성일
2009.06.20 18:23
등록자
이동선
조회수
1065
[고대100주년기념 노벨상 수상자 초청] 미 콜로라도대 와이먼 교수

"과학자 되려면 13~15세때 방향 잡아야"
문학등 관심분야 넓혀 &039;자기생각&039; 키워야
원리만 알면 물리학은 과학중 가장 쉬워

[▲ 칼 와이먼·교수 : 정밀측정·나노기술 등에 응용할 수 있는 초저온 기체상태 물질에 관한 연구로 같은 콜로라도 대학의 에릭 코넬 박사, 독일 태생의 볼프강 케테를레 박사와 함께 2001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200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칼 와이먼(Carl E. Wieman)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는 2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일반인들이 물리학을 어렵다고 느끼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과학의 다른 분야보다 휠씬 접근하기 쉬운 학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고려대학교가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아 연중행사로 벌이는 ‘노벨상 수상자 초청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 중이다. 다음은 와이먼 교수와의 일문일답.

―노벨상을 받은 이유를 설명해달라.
“1924년 인도(印度) 물리학자 보스(Bose)와 ‘상대성 이론’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이론적으로 예측한 원자(原子) 세계에서의 현상을 70여년 만에 입증했다. 가스 상태의 원자들을 절대온도 0도(섭씨 영하 273.16도)에 가까운 극저온으로 냉각했을 때 모든 원자들이 일정한 특성을 띠며 응축된다는 이론을 현실로 증명한 것이다. 이를 ‘보스·아인슈타인 응축’(BEC)이라고 부른다.”

―BEC가 일반인의 삶에는 과연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나?
“인내심을 가져달라. 이제 막 시작한 분야인 만큼 나도 잘 모르겠다. 현재는 정밀 측정에 이용된다. 석유가 매장된 곳이나 바다 속 잠수함 탐지 등에도 사용된다. 이것이 컴퓨터와 접목된다면 수퍼컴퓨터를 휠씬 능가하고 이 세상의 모든 암호나 코드를 해독할 수 있는 컴퓨터가 나온다고 한다. 활용 범위는 앞으로 무궁무진할 것이다.”

―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중1학년 때 과학 선생님이 영향을 줬다. 맨 처음 과학에 관심을 갖도록 해준 분이다. 열정을 가지고 여러 원리들을 너무도 쉽게 설명해주셨다. 대학에서도 그분처럼 이해가 잘 되도록 설명해준 교수는 없었다.”

―어린 시절 TV도 없는 오리건주의 산림지역에서 생활했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목재소에서 일하셨다. 어렸을 땐 집에 TV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난 대신 책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매주 한 번씩 나를 공공도서관으로 데려가 1주일 동안 볼 책들을 빌리게 하셨다. 그때 독서 습관이 나중에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연구를 위해 6개월 동안 집에 안 들어간 적도 있었다는데….
“대학 때 일이었다. 집에 안 들어간 게 아니라 기숙사에서 아예 방을 빼버렸었다. 어차피 연구 때문에 밤늦게 들어가서 아침 일찍 나오는데, 기숙사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뭘 하든지 간에 그런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당시 연구가 너무 좋았다.”

―왜 하필 과학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물리학을 택했나?
“(손을 강하게 저으며) 전혀 그렇지 않다. 물리학은 과학 중에서 가장 쉽다. 원리를 몇 가지만 이해하면 된다. 일반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접하는 전등, 엘리베이터 등 모든 것이 물리학의 원리다. 그만큼 실생활과 밀접하기 때문에 오히려 배우기 쉽다. 단지 현재 교육체계가 어렵게 가르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온 것이다.”

―과학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현재 교육의 문제는 원리를 암기식으로 주입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공부가 재미 없어진다. 호기심을 유발해줘야 한다. 가령, 집에 있는 전자레인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먼저 가르쳐 준 뒤에 관련된 전문 원리들을 설명해준다면 이해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사람의 두뇌는 사고하면서 변하는 것이다.”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나?
“내 생각엔 보통 13~15세에는 방향을 잡아야 한다. 수학 등 특정한 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학생들은 관심있는 분야만 공부하는 지식 편식(偏食) 현상이 심한데, 어떻게 보는가?
“그건 옳지 않다. 난 학창시절 문학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고, 체스와 테니스 선수로도 활동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런 모든 것이 종합될 때 좋은 연구결과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과학도 사회적 활동이다. 남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있는 콜로라도대에서는 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에게 상당한 어휘 구사 능력을 요구한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을 개발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국에서는 의과대 등에는 지원자들이 많이 몰리지만 순수과학 분야는 기피하는 고질적 현상이 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돈 문제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정부가 장기적 안목을 갖고 나서야 한다. 순수과학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순수과학이 없으면 응용과학은 설 기초를 잃는다.”

조선일보 2005.05.25
글=김봉기기자 knight@chosun.com  사진=조인원기자 join1@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