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및 유래

선사시대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지석묘(고인돌)이 주작산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음

백제시대

삼국시대 백제의 관할하에 도무군(道武郡)과 그 속현으로 동음현(冬音懸)에 속

통일신라시대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행정개편으로 양무군(陽武郡) 탐진현(眈津縣)에 속함

고려시대

940년(태조 23) 양무군이 도강군(道康郡)으로 탐진현은 영암군 속현이 됨, 1124년(인종 2) 영암속현이 장흥부의 속현이 됨

조선시대

1417년(태종 17) 도강현과 탐진현을 합하여 강진현(康津縣)이 되면서 강진현 백도면(白道面)에 속하게 됨

1895년

5월 1일 나주부 강진현 백도면 소속

1914년

3월 1일 강진군 도암면 소속으로 변경

1973년

7월 1일 도암면 신전출장소를 설치

1974년

10월 26일 군 직할 출장소로 승격,도암면에서 분리

1983년

2월 15일 강진군 신전면으로 승격

유래

“신전면”은 원래는 백도면이었다. 조선시대 때의 백도면은 41개 리로써 현재의 신전면 일대와 해남군 북일면 일대, 북평면 일부 지역으로 강진현에서는 가장 큰 면이였으며 면소재지는 신전면 용정마을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개편 이후 약 70여 년간 도암면 소속으로 지속되다가 1983년 분면 되면서 “신전(薪田)면”이라 칭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그러나 당시 면소재지 지역 일대를 통설로 쌔빳등“ 또는 ”신전“이라 불리었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를 그 때의 정황으로 보와 야산이었던 이 지역 일대를 밭으로 개간하여 뽕나무를 심었었다. 그래서 추측이건데 ”새밭등“을 ”쌔빳등“이라 불렀고 ”신전(新田)“이라 불렀을 가능성과, 다른 추측으로는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길렀기 때문에 누에가 집을 짓고 사는 섶 신(薪)자를 써서 “신전(薪田)”이라 했을 것으로 추측은 되나 작명한 자는 말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신전면 마을지명유래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