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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명장, 김억추 장수 이야기
앞날 역사엔 가정이 없다는 말은 더할 나위 없는 진실이고, 역사는 똑같이는 아니지만 변주되어 반복된다는 말 또한 진실이다. 임진왜란 전 조선이 당쟁에만 매몰되지 않고 조금만 더 일본의 침략에 대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선도 나름 진관체제의 허술함을 알고 제승방략을 도입하고 성을 쌓는 등 대비하였으나 정쟁으로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일본군의 상륙 지점이 경상도 부산포일 것은 분명했고 상륙시기도 일기가 좋고 남동풍이 부는 봄철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순신이 수군통제사가 되어 수송선에 가득하게 탄 수군에 약한 일본 보병들을 부산앞바다에서 요격하고, 그 다음 그런 공격에 살아남은 일본군이 상륙할 때 권율의 육군이 궤멸하였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수학여행 사전답사로 중국 상하이와 항저우를 다녀왔다. 25살에 자식 둘을 두고 의거로 산화한 윤봉길 의사의 丈夫出家生不還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 라는 글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밤에는 동방명주에 올라 15억 중국의 무서운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오천년 역사에서 일본의 침략보다 중국의 침략과 지배가 훨씬 많았음을 되돌아 볼 때 大國崛起로 무서울 것 없는 현대판 始皇帝,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의 앞날에 공포감이 일었다. 트럼프, 아베, 푸틴, 시진핑 과연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승옥 군수님께서 우리 강진강진을 알릴 수 있는 인물에 대하여 역사소설을 집필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고증을 통하여 강진의 인물을 배경으로 역사소설을 집필해 주시는 정찬주 작가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도 강진 출신의 한사람으로서 강진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옛날의 강진의 생활상과 사용언어나 환경 등에 대하여 어린시적의 추억을 더듬으며 기억해 보곤 한답니다. 고향을 떠나온 지 어언 30년이 넘다보니 고향의 정겨운 말씨 등이 추억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느꼈었는데 이 소설을 통하여 새롭게 접해봅니다 정 작가님 마지막까지 더욱 힘쓰셔서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집필 부탁드립니다 남양주우체국장 김석주 드림
명량의 전운이 감돌고 있는 어란포, 벽파해전 긴장감이 최고조에 오른 장수들의 심리를 엿 볼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순신과 김억추의 성향과 심리전은 독자에게도 긴장감을 줍니다. 성취는 평탄감 보다는 긴장감속에서 이루워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김억추 장수를 좀더 배려했다면 김억추 장수가 전사에 큰 족적으로 남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성하지 않은 몸으로 조정의 지원도 받지 못한 절대 열세의 상황에서도 할 수 있고 이길 수 있다는 그 자신감으로 지형지물과 물 때를 살펴 철저하게 대비하는 자세는 역시 귀감이다. 한 때는 동급의 장수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장에 임했지만, 지시하고 따라야 하는 상황에서 전체의 상황을 통찰하는 눈높이에는 다소 차이가 느껴진다. 통제사로서는 소수정예로 적을 맞서며 단 한사람의 아군의 손실방지와 사기를 고려하는 핀단에 비하여 적의 예봉을 꺾어보려는 관할구역 책임장수사이의 미묘한 온도차이가 느껴진다. 명량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김억추를 비롯하여 통제사의 휘하장수들의 이름이 너무도 낯익고 자랑스럽게 다가온다. 호남출신 장수들이 통제사 이순신과 호흡하며 남도의 바닷길을 지키려는 혼신의 노력이 눈앞에 어른거린 듯하다. 선생님 즐겁게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순신과 김억추의 냉냉한 갈등~~ 아무리 명장도 결국은 사욕칠정으로 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인간에 지나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그러신 분들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갖은 노력에 더더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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