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

작성일
2022.08.02 17:01
등록자
윤창식
조회수
230
"임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의 시인 김현구선생을 기리며 /윤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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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에 헤르만 헤세의 고향인 독일 남부의 작은 마을 칼프(Calw)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골목길에 위치한 2층 생가와 책방 등을 둘러보고 독일맥주를 한 잔 마시고는 도시로 다시 나오려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고1 쯤 되어 보이는 대여섯 남녀 청소년들이 지나가기에 잠시 붙잡고 말을 걸었다.

나는 쥐트코레아(Süd-Korea)에서 헤르만 헤세 작품에 관한 논문을 쓰려고 참고삼아 이곳에 왔노라고 했더니 모두 의아한 표정들이다. 그래서 헤세를 모르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하나같이 잘 모르는 눈치들이다. (이~런)

순간 나는 적잖이 실망하면서 아이들 자신의 지역에서 탄생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만 헤세를 잘 모르다니 교육적으로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며 남의 나라 교육까지 걱정했었다.

2
이러한 일이 수십년이 지난 내 고향 강진땅에서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北은 소월 南에는 영랑" 식으로 한반도의 대표 문인을 일컫는다지만 사실 김영랑시인 못지않게 뛰어난 남도의 서정을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사 알었으니 그대가 진정 강진을 혹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 맞나? 나는 느닷없이 자책의 시간을 가졌던 것.

대체 뭔 소리냐고? 며칠 전 볼 일이 있어 읍내에 들렀다가 시간이 남아서 우연찮게 군립도서관 앞에 세워진 시비(詩碑)를 하나 보게 되었다. 바로 시비의 주인공은 玄鳩(현구, 검은 비둘기)라는 아호로 시향(詩香)을 떨친 강진 출신 김현구(金玄耉)(본명의 한자)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

김현구선생의 여러 작품을 읽어보았더니 김영랑의 작품에 결코 뒤지는 것 같지 않는 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 많이 아쉽다.

당시 시문학파로 활동한 김현구(1904~1950)와 김영랑(1903~1950)은 이웃 마을 출신인데다 출생과 별세의 시기가 거의 같다는 것 또한 범상한 일은 아니다. 김현구 시인은 정치적 색채의 시를 배제하고 시어를 갈고 다듬어서 순수서정시를 지향했던 시문학파 동인으로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신석정 등과 교유했다고 한다. 현재 이를 기념하여 강진 시문학파기념관이 운영 중이다.

임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 / 현구(玄鳩)

한숨에도 불려갈듯 보-하니 떠있는
은빛 아지랑이 깨어 흐른 머언 산둘레
구비 구비 놓인 길은 하얗게 빛납니다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

헤어진 섬돌에 떨든 햇살도 사라지고
밤빛이 어슴어슴 들우에 깔리여갑니다
홋홋달른 이 얼골 식혀줄 바람도 없는 것을
님이여 가이 없는 나의 마음을 아르십니까
...........
(*)후기
감히 다짐해본다 - 좀 늦었을지 몰라도, 영랑 현구 두 분 대선배님의 시혼(詩魂)을 받들어 이 불초소생이 후세에 빛날 아름다운 서정시를 한 번 지어볼까? 안 되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