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의 원칙

작성일
2020.11.03 12:38
등록자
최한우
조회수
145
씨를 뿌려 추수하기 까지 농부는 노심초사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매일밥상에 올라오는
쌀은 88번의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귀한 농산물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과 막바지 가을추수 계절을 맞아 어릴 적 농촌에서 성장한 우리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농촌에서 한번쯤은 해보았을 추억, 서리는 “떼를 지어남의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이라고 사전에 기록되어 있다. 훔치면 도둑으로 죄인데 왜 장난이라고 하였을까? 배고픈
시절 씨 뿌려 놓은 농촌의 들판이 풍부해 지나 먹을 것이 없는지라 자라는 아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까.

옛말에 참외밭을 지날 때는 신발 끈을 묵지 말라, 배 밭을 지날 때는 갓끈을 고치지 말라 하였다.
어른들의 행동에 오해를 사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서리를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주어져 있었다.

서리의 시작은 밀이나 완두콩부터 시작되는데 밀과 같은 이삭의 곡식은 한사람이 10이삭 이하로
서리하라. 많은 량을 잃으면 수확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고 다음은 감자, 고구마, 땅콩등 덩이
뿌리는 포기체 뽑지 말고 흙을 파고 낱게를 서리하라. 포기체 뽑으면 어린열매 마저 버리고, 덩이
뿌리는 하루에 자라는 량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그냥두면 서리량을 채워 주기 때문이다.

다음은 참외와 수박 밭에는 절대 두둑을 밟지 않고 고랑을 밟고 다니며 익은것만 서리하라. 두둑의
줄기를 밟아 포기전체를 죽게 만들 우려가 있고 , 덜 익은 것을 서리하면 맛이 없어 버리기 때문이다.
닭, 토끼와 같은 소 가축은 씨로 쓸 것은 서리하지 말라 한다. 번식을 할 여지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리를 당하는 농부 주인에게도 주어진 원칙이 있었다. 서리를 하는 아이들을 고함치거나 갑자기
나타나 놀라게 하지 말라는 주의가 있다. 그래서 주인은 헛기침을 하며 아이들이 달아나게 한다.
왜냐면 급하게 놀라 달아나면서 농작물을 밟거나 뿌러뜨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을 몰랐던 고등학교 시절 겨울밤 모여 공부하다가 배가고프면 장난끼가 발동하여 함께
공부하러온 친구집에 닭을 많이 기르는 것을 아는 우리는 그 친구를 졸라 귀가 약간 어두운 할머니가
혼자 집에 계시는 정보를 얻어 주인은 빼고 몰려가 큰장닭 2마리를 잡아와 그날 밤 배불리 먹었던
추억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때의 닭 주인 친구는 고향 축협에서 전무로, 서리를 하였던 친구 중에는 부산에서 의정활동을,
범죄를 예방하는 경찰관으로, 또 다른 친구는 서울시에서 공무원을 잘 수행하고 이제는 모두 정년을
하여 인생후반전을 잘 이끌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