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인 시대가 정말 그립다.

작성일
2019.12.16 15:54
등록자
이형문
조회수
279
2019년 황금돼지해의 한 해도 이제 저물어 간다.
세월이 여삼추(如三秋)란 말이 기억난다. 몹시도 애타게 기다리던 날들이 3년같이 길게만 느껴지더니 어느새 또 한 해를 보내게 되는 송년(送年)을 맞는 빠른 세월 앞에 지나온 다사다난(多事多難)날들을 되뇌어 본다. 필자의 경우도 2년여를 써오던 현 시국에 관한 내용의 저서를 남겼다.
지난날 경북대학교 총장을 지냈던교수가 자신이 저질은 과거를 밝힌 적이 있었다. 이분의 선친께서 소작농을 하던 당시,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을 한하여 자식이라도 잘 가르쳐보겠다는 일념으로 시골‘산청’이란 곳에서 대구중학교에 진학시켰는데 1학년 때 성적표가 68명중 68등으로 꼴등 한 것을 반대로 고쳐 68명중 1등 한 것처럼 잉크로 1/68로 고쳐 성적표를 아버님께 보이며 거짓말한 사실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님께서는 아들의 그 성적표를 자랑삼아 1등을 했다며 동리에 크게 자랑하면서 집안 재산 제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까지 벌렸었다.
아버님께 진실을 밝히지 못한 죄책감에 자살까지 결심했다가 다시 생각하기를 나도 1등을 할 수 있다는 각오가 생겨 그 때부터 열심히 공부,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후 대학교수까지 됐다고 했다.
아들이 나이 45세 되던 날 부모님 앞에 무릎은 꿇고 앉아 33년 전의 일을 사죄(私罪)하려고 하자 이때 아버지는“그만해라. 손자 아가 들을라. 다 알고 있었다.” 자식이 위조한 성적표를 알고도 덮어주시고 재산 목록 제1호인 돼지까지 잡아 자랑을 하신 부모님의 갸륵하시고 넓으신 아량(雅量)에 감복(感服)한 교수가 돌아가신 이후 그 은덕(a favor)을 잊을 수 없다는 고백은 실화로 남겼다.
그같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마음의 죄를 짓는 사람인데 그 중에서도 부모에게 짓는 죄가 제일 크다고 한다. 부모란 일생동안 자식의 잘못을 몇 번이나 용서할까? 그리고 그 아픔을 마음에 담아두며 자식을 원망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자식을 끝까지 다 용서하고 잊어버린다. 필자도 이제 80줄 중반을 넘어서고 보니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봐 지는 일이지만, 필자의 셋 자식들도 그런 많은 일들에서 부모의 본을 보며 지네들 자식들에도 자연스런 그런 모습을 가르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부모란 그토록 자기 자식들이라서 다 그런 마음이다. 그처럼 부모란 누구 할 것 없이 바다같이 넓으신 자식 사랑의 그 은혜(恩惠)야말로 부모의 깊고 진한 정(情)때문이 아닐까? 이글은 필자가 2014년에 저술한책46쪽에 수록했던 내용 중 일부가 기억이나 옮겨봤다.
오늘날 시대는 돈이면 다 된다는 자본주의 세상에 우리는 살아간다.
반세기전에 살아왔던 필자의 어린 시절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이젠 가화만사성이란 말 자체가 사라져가는 험악한 현실 속에서 그 시절이 그립다. 없이 살아가더라도 한 가족이 모이면 티 없이 너 것 내 것 가리지 않고 오순도순 정겹게 지내던 그 시절이 더 없이 그리워짐이 왜일까? 전화가 없던 시절 하루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가 그리워 찾아가 문안드리며 다정히 나누던 음식이며 이야기로 밤을 꼬박 새우던 기억들,,,,,,,.. 지금 세상은 비행기로 인터넷 영상 핸드폰까지 있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 간 연락도 끊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정이 메말라버린 탓이다.
이웃이 누가 살고 있는지 조차도 상관치 않고 내만 배부르고 편하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세상이 돼 버렸다. 자고나면 엄청난 사건들이 간(刊)을 서늘케 만든다.
과거의 아침 인사는 못 먹고 굶주려 죽지 않고 살았다하여 밤새 안녕이란 인사가 유행했으나 오늘날 세상은 하루 잘 보내셨습니까? 가 첫마디 인사다. 정말 눈 빤히 뜨고 코 베어 가는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사기, 절도, 강도, 살인, 방화, 이혼, 교통사고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변한 사회의 변화로 가족 화합의 가화만사성이란 말 자체에서 한 없이 멀어져가는 현실이다.
결혼 못한 미혼 남녀들이나 일부러 결혼을 기피하고 애 갖기를 기피하는 시대에 자녀 교육 등 가족공동의 모임 등 구조적 방법 자체가 없어져 버린 세상이 되었다.
이혼하고 혼자 자녀를 키우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갈 곳 없는 노숙자들까지 많아지며 살벌한 사회의 반쪽 인생가족의 비율이 50%를 넘어섰다는 한심한 뉴스를 들을쩍 마다 남의 일 갖지 않아 가족제도의 과거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한 가정이나 사회가 그 어떤 어려운 경우일지라도 서로 양보하고 화목하며, 이해하는 데서 이뤄지는 것인데 그러지 못한 오늘날의 한심한 사회현실이 돼 버렸다.
이 해를 또 보내며 착잡한 생각이 엄습하며 얼마 남지 않은 이 노익장으로 글을 쓰며 정으로 뚤뚤 넘치게 살아가던 그 어린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