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다 그런 거래요

작성일
2016.11.13 13:51
등록자
이도룡
조회수
790
도서관 앞에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예전에는 나무의 수종, 연령 따위를 알 수 있는 팻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사오백 년은 족히 된 나무다. 나무는 그간 더 늙어서 거무죽죽하고 푸른 이끼와 딱지가 군데군데 끼어 있다. 울퉁불퉁 뿌리가 드러나 있는 모양이 꼭 검버섯이 핀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가락 같다.
그런데 그 나무 앞에, 정확히 얘기하면 도서관과 우체국 사이 도로에 금요일 오후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춘다. 전해들은 얘기로는 노인 우울증 예방 차원에서 하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젊은 여성도 눈에 띄고 공익근무요원 3명도 함께 운동에 참여하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삼사십 명 정도가 모여 있고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강사가 춤을 추면 그걸 사람들이 따라하고 있었다.
엉거주춤 따라 추는 몇몇을 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춤을 춘다. 엉거주춤 춤을 추는 분들은 무언가 주목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그래도 강사의 구령에 맞춰 즐겁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군무를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감돌고 흥이 난다. 춤추는 분들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서일까. 예기치 않게 기분 좋은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필자가 그중 가장 유심히 본 분은 맨 뒷줄에, 그러니까 우체국 출입계단 위에 서서 춤을 추는 어르신이었다. 아동안전 지킴이라고 쓰인 형광색 옷을 입은 어르신은 칠순 정도 되어 보이시는데도 정말 즐기시는 모습이었다. 그 분을 따라 나도 조금 춤을 춰보았다. 춤을 췄다기 보다는 사실 창피해서 양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흉내만 내는 시늉을 했다. 강사의 손짓은 ‘나빌레라’인데 내 몸짓은 꿈틀대는 굼벵이였을 것이다. 그래도 목운동을 따라하며 하늘을 보니 하늘은 청명했고 땅을 보니 잔디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때쯤이었다, 함박웃음이 터져 나온 것은.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래요, 배경음악으로 최근에 나온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왔다.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래요. 무언가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고개가 절로 끄덕여 졌다. 그래, 산다는 것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오래된 나무’ 앞에서 ‘어르신’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최신’ ‘트로트’를 들으면서 생기 넘치는 ‘젊은이’마냥 ‘춤’을 춘다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유쾌해지는 그런 것 아니겠는가.
벤치에 앉아 있는데, 운동이 끝이 나고 형광색 옷을 입은 어르신이 다가오시기에 어르신께서 가장 열심히 하시더라, 며 말을 건네 보았다. 어르신이 무얼, 하며 손사래를 치신다. 그리고는 여운이 가시질 않았는지 벤치를 잡고 푸시업을 서너 번 더 하신다.
이런 소소한 프로그램 하나로 도시를 생동감 있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건 더 없이 좋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상쾌한 기분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저 오래된 나무도 신나는 노래를 들었으니 조금은 신나했으리라는 것.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래요, 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는 것.

※ 운동이 11월 말까지 한다니 한 번 쯤 참여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