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숭생숭할 때 어떻게 푸십니까? 작성자: 이도룡

작성일
2016.11.07 08:47
등록자
총무과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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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숭생숭할 때 어떻게 푸십니까?

가을이다. 가을이어서 마음이 싱숭생숭한지 모르겠다. 요 며칠 마음이 바람 부는 날 떠다니는 검정색 비닐봉지 같다. 굴러다니다가 자동차 뒷바퀴에 채이고 날아올라 바람 따라 휘휘 돈다. 그야말로 마음이 들떠서 어수선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양이라는 단어 뜻 그대로다.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서 그런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의 변화라고 나름 분석을 해보지만 쓸데없는 일이다. 내 생리현상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내 스스로 조절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왜 그러냐? 라는 마음은 접어둔다. 살다보면 싱숭생숭해질 때가 있지 않냐고 위안을 삼으면서 말이다.
조절과 대응은 다른 문제이다. 조절은 못하지만 대응은 할 수 있다. 싱숭생숭한 이 마음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무언가 잘 안 풀리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걷다 보면, 생각이 툭 터져 나올 때도 있고 보이지 않던 틈새 길이 열리기도 한다. 툭 튀어나온 생각의 조각 하나가 막혔던 나의 마음을 툭 열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반대의 경우도 있다. 머리가 복잡할 때 하염없이 걷다보면 어느 순간 그 많던 생각들이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그래서 필자는 걷는다. 마음이 오늘처럼 싱숭생숭할 때는 이렇게 걷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그러고 보면 ‘싱숭생숭’ 이라는 어감이 참으로 재밌다. 우선은 오밀조밀이라는 단어처럼 반복형 단어이다. 그리고 확장형 구조를 띈다. ‘l’ 발음보다는 ‘ㅐ’발음이 크기 때문이다. 음운론적 관점에서 생각하다보면 머리가 더 아파지니 머릿속에 구겨넣고, 싱숭생숭 여러 번 소리내어 말해본다. 말할수록 익숙하고 정겨운 느낌이 든다. ‘생숭싱숭’ 하면 무언가 밍숭한 느낌이 들고, 익숙해서 딱 떨어지는, 딱 떨어져서 자연스러운 단어, 싱숭생숭. ‘싱슝샹슝’이라는 해괴한 단어를 만들어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무튼 새삼 우리 선조들의 단어 센스에 감탄이 나온다.
물론 오늘처럼 싱숭생숭 할 때 마음을 다잡는 건 이유가 있어서다. 이른바 목적의식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고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 업무가 있어서이다. 싱숭생숭한 건 내 마음이지만 싱숭생숭한 일은 없다. 그런데, 싱숭생숭 하니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다잡고 하던 일을 끝내야 할까? 아니면 이 마음을 흔들림에 맡긴 채 그냥 둬버릴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상념이 이끄는 대로 걸어갈 때였다. 사의재 쪽을 지나 공설경기장으로 가는 고갯길을 넘어갈 때였다. 검정고양이 한 마리가 인도에 널브러진 채 죽어 있었다. 로드킬 보다는 추운 날 동사한 것과 가까운, 온통 검은색 털이 흰 서리가 앉은 것처럼 반짝 빛나서 오히려 윤기가 도는 것처럼 보이는 죽음.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삶과 죽음 앞에서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저 한 마리 고양이의 죽음 앞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사는 게 저치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얘기해야 하나. 그러니 싱숭생숭할 마음일랑 접어두고 열심히 살아가자고 해야 하나. 아니면 삶이 부질없으니 살아 있는 동안 즐기면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현상은 하나인데 상념은 또 몰아친다. 몰아치다 못해 어수선하고 갈팡질팡한다. 목적은 싱숭생숭한 마음을 풀기 위함이었는데, 그래서 푸는 방법을 얘기하고 싶은 거였는데, 한 마리 고양이의 죽음이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린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한다. 인간이기에 실수하고 인간이기에 잘못을 저지른다. 물론 삶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자세임을 잘 안다.
삶에 있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누군가는 사는 게 바빠 죽겠는데 싱숭생숭할 틈이 어딨냐고 꾸짖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늘만은 반문하고 싶다. 싱숭생숭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혜택 아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