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세이) 가을이 떠나가는 길목에서

작성일
2015.11.18 13:52
등록자
이홍규
조회수
632
아침부터 이슬비가 낙엽위로 떨어지고, 차가운 바람이 쓸고 갔다. 가을을 좀더 붙잡고 싶었으나, 계절의 전령이 재촉을 하여, 떠나보냈다.

그냥 바라만 봐도 마음이 풍요로웠던 풍경들을 추억 속에 묻은 채 떠나버린 가을을 그리워 하니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노오란 은행잎에 발 앞에 뒹굴고 있어서, 주워서 책갈피에 넣으니, 한편의 시라도 쓸것같은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린소년 시절의 감성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불혹(不惑)의 중반을 지나, 지천명(知天命)을 향해 세월의 강물은 흘러간다.

시를 쓴지 오래되어,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감성의 샘물이 메말랐다. 낙엽을 밟는 소리가 포근하게 느껴지고, 이슬비를 우산으로 피하며, 오솔길을 따라 산길로 들어갔다.


주위는 온통 어두컴컴하고, 고요와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갑작스럽게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나무들은 움츠러 있고, 낙엽이 수북히 쌓여, 걷는 길이 편안했다.


한걸음 한걸음 발길을 옮기니, 갑자기 상수리 열매가 옆으로 툭 떨어져서 놀란 가슴을 진정 시켰다. 붉은 단풍잎으로 수놓은 산길에 안개가 감싸고 있어서, 길가의 바위에 걸터 앉았다.


신우대가 우거진 곳에서 바람이 한참을 요란한 소리를 내고서 숲속으로 횡하고 사라졌다. 왠지 머리끝이 일서는 듯한 느낌이 들어 다시금 오던길을 내려왔다.


사람은 이렇게 산속에 혼자 있을 때 두려움을 느낌으로, 함께 어울려 사는 것같다. 구절초가 우거진 산모퉁이에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만지고 지나간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바람이 세차가 불면서, 산아래로 내려가라고 재촉을 했다. 오늘은 산이 반기지 아니하고, 차갑게 냉대를 하여 서운한 마음을 붙잡고 내려왔다.


대문앞에 들어서니 백구가 나와서 꼬리를 흔들며 맞이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인을 기다린 충성심을 칭잔 하니, 어쩔줄 몰라 멍멍 짖어댔다.


화단을 가득채운 노란 국화의 향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군자의 절개를 보여주니, 참 대견 스러웠다. 오랜 시간을 밖에 있다와서 몸이 으실의실 하여, 설탕에 재어둔 생강을 주전자에 넣고, 가스렌지 불이 붙이니 수증기가 무럭무럭 올라왔다.


하얀 머그컵에 생강차를 따라서 후후 불면서 한모금을 마시니, 온몸이 따뜻한 기운으로 채워졌다. 가을은 어짜피 떠나갔고, 긴긴 그리움이 남지만,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내일 날이 밝으면, 장작을 패서 길고긴 차가운 시간을 녹이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적으려 한다. 어둠이 깊게 깔린 창밖에는 빗줄기가 세차게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