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세이) 감자를 수확한날의 행복한 추억

작성일
2015.05.15 15:00
등록자
이홍규
조회수
1528
밀짚모자 밑으로 흐르는 땀 줄기를 닦으며, 밭 고랑을 호미로 살짝 긁어내니 주먹한한 금빛 덩어리가 모습을 보인다. 보리 고개의 궁핍함을 채춰 줄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봄날에 누리고 있으니, 값진 보물을 발견한 듯 했다.
 
주말이라서 온 가족이 밭에 나와 흙을 만지며, 하늘과 땅의 기운을 충전하며, 수확한 감자를 바구니에 담는다. 자기의 주먹보다 더 큰 감자를 만지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딸아이는 마냥 즐겁기만 하다. 푸르른 자연속에서 직접 몸으로 느끼는 살아있는 교육으로, 밭은 훌륭한 교실이다.
 
하늘엔 구름이 살짝 햇볕을 가려주고, 찔레꽃 피어있는 산기슭엔 벌과 나비들이 꽃향기를 마음껏 맡으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고 있다.
 
이마에 맺힌 귀한 땀방울을 닦으며, 냉수를 마시는 큰 딸아이도 오랜만에 밭에 나오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대나무 바구니에 흙속에서 갓 캐어낸 귀한 기쁨을 담으며, 교과서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소중한 공부를 배우고 있다.
 
흙은 생명을 키우기 때문에 늘 부드럽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어루만지는 모성애를 지녔기에 정직하다. 심는대 거둬들이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돌아가는 안식처 이다.
 
감자가 땅 밑에서 열매를 맺으며, 수많은 병해충의 공격을 받았지만, 군건히 이겨냈기에 오늘 푸성한 수확을 안겨 주었다. 감자는 하늘이 맡긴 천명(天命)을 다하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도를 이루었다.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는 구황작물(救荒作物)로, 보리 고개를 넘기게 하는 구한 역할을 했다. 한참을 일하다 보니 배고픔이 느껴져서, 수확한 감자를 밭옆에 계곡에 가서 깨끗하게 씻은후
압력솥에 넣고 가스레인지로 열을 가했다. 힘찬 가스가 전해주는 열기에 지쳤는지 압력솥이 수증기를 내 뿜으며, 투덜거린다.
 
한참이 지난 후에 가스불을 끄고, 압력솥 뚜껑을 여니, 하먄 수증기가 가득 올라온다. 젓가락으로 쿡 찔러 보니 잘 익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감자를 꺼내 쟁반에 담아, 아이에게 주니, 뜨거워서 한참을 기다리다 껍집을 볏겨 소금에 찍어서 먹는다.
 
잘 익은 감자에 소금을 뿌린 후 김치를 얹여 입안으로 넣으니, 뜨거운 기운이 입안에 가득하다. 이 맛은 집에서 먹는 것보다, 확트인 야외에서 먹는 맛이 더 뛰어나다.
 
감자를 먹으며, 함박 웃음을 짓는 두 아이의 모습이 정말 천진난만 하다. 부모와 자녀간 대화가 부족한 요즘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하다. 학교와 학원과 집을 오가며, 시계추처럼 매일 반복된 생활을 하는 아이들의 감정과 정서가 점점 메마르고 있다.
 
학교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정과 감성이 풍부한 아이로 성장 하여, 사려깊고 남을 배려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버지가 농사짓는 농자에서 직접 농사체험도 해보고, 자연을 관찰하며 살아있는 학습을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감자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마치고, 스무개의 프라스틱 상자에 담아 트럭에 실으니 흐뭇한 마음이 가득했다. 아이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농협으로 향했다. 

농협의 선별장에 도착하니, 직원이 나와서 맞이하며, 수량을 확인하고, 선별포장 하는 곳으로 옮겼다. 오늘 선별포장을 마치고 큰 트럭에 실려 머나먼 천리길을 달려 서울의 가락공판장 으로 간다고 한다. 

애써서 가꾼 감자를 출하하는 농부의 마음은 다키운 자식을 출가 시키는 기분이다. 두 딸아이 에게 농산물이 어떻게 소비자에게 판매가 되는지 알려 주고 싶어서, 농협에 함께 와서 출하현장을 보여 줬다.
 
세월이 흘러 먼훗날 딸들이 엄마가 된 후, 아이들에게 봄날의 추억을 심어주며, 아빠와의 행복한 시간을 물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