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의 두 외국인 수녀

작성일
2015.04.10 10:57
등록자
이형문
조회수
1404
필자가 2014년 가을 단풍길 쯤, 고흥군 도양읍 녹동 소록도후생원에ㅡ일반인의 출입이 격리되었던 곳에 대교가 건설된 후 출입이 허용돼ㅡ 아내와 함께 도시락을 싸가 하루를 쉬다온 일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살아있는 전설의 성녀 두 수녀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실천했던 나이팅게일처럼 나환자들의 상처에 장갑도 끼지 않고 손수 약을 발라주었던 “성모마리아” 같은 분들입니다. 우리나라 최남단 소록도에서 얼굴과 몸이 문드러진 흉측한 나병환자만이 사는 곳에서 43년간을 묵묵히 일하신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 두 분은 공식적인 작별인사도 없이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조용히 섬을 떠나 고국 오스트리아로 가셨답니다.
 
이 두 수녀님은 꽃다운 나이 20세 때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소록도병원 간호사를 지원해 평생을 문드러진 나환자와 함께 살아왔습니다. 마리안(71)수녀님은 1959년에 그리고 마가레트(70)수녀님은 1962년에 한국 소록도에 첫 발을 딛든 인연으로 떠나는 날까지 “인간의 값진 보화를 하늘에 심고” 떠나신 분들입니다. 더욱이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사업에도 헌신하신 분들이라 합니다. 정부에서는 이들의 선행을 뒤늦게 알고 1972년 국민포장, 1996년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했다지요.
 
이 두 수녀님들은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라는 편지 한통만을 남긴 채 말입니다. 그 편지 속에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부담을 주기 전에 우리들이 있어야 하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해왔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이들은 떠나면서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에 대해 오히려 용서를 빈다고 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꽃다운 20대의 처녀들로 와 있는 동안 수천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고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 잔치마저 거절하고, 심지어 어떤 상이나, 인터뷰도 일체 거절하며 오직 주님 외엔 누구도 모르게 참 배품만을 실천했습니다. 심지어는 본국에서 보내오는 봉급과 생활비, 우유, 간식비도 환자들의 노자로 나눠줬다는데 두 수녀님의 귀향길엔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씩만 들려있었다는 것입니다.
 
상처받은 버림의 섬, 그 외로운 섬에서 반세기가 다되도록 문드러진 환자들을 보살피다 소리 없이 떠난 이들은 민들레 홀씨마냥 바람에 날려가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 믿습니다.
이들이 처음 소록도에 왔을 땐 환자가 6,000명과 어린 아이들도 200명이나 되었고, 약도, 돌봐줄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지요. 이런 환자들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직접 치료해온지 40년, 할 일들이 지천에 널려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다지요. 그렇게 반세기가까이 숨은 봉사로 이젠 많이 좋아져 지금은 환자가 600명 정도라고 합니다.
 
소록도 주민 자치회장인 김영호(56)씨는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고 말했다지요. 마지막 작별인사도 없이 조용히 섬을 떠나버린 두 수녀 분들 때문에 온 섬이 수심에 잠겨있다고 했습니다. 떠난 두 수녀님들 때문에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깊은 슬픔에 잠겨 오래도록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두 수녀님을 위해 기도드렸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세라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그저 조용히 떠난 이들 두 수녀 나이팅게일 분들. 정말 많은 덕을 심어두고 떠나신 장한 분들이십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떠나던 날 소록도 쪽을 바라보며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에게 하염없이 손을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이들에겐 소록도가 고향과 같아서 수도원 3평 남짓한 방에 소록도가 그리워 온통 한국장식품으로 꾸며두고 “소록도의 꿈”을 꾸고 계신다고 하지요. 이들 방 안에 한국말로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라고 써져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집, 우리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헌신하신 수년님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