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에 남긴 청빈(淸貧)한 세 분의 흔적

작성일
2014.09.19 09:35
등록자
이형문
조회수
1046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는 휠체어, 지팡이, 겨울 털모자, 집도, 통장 하나도 남기지 않았고, 불교의 성철스님은 기우고 기워 누더기가 된 가사(袈裟) 두 벌만 세상에 두고 떠나셨고,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은 지구를 다녀간 물질적 흔적은 신부복과 묵주 뿐.......
 
그러나 이 세 분들은 알고 보면 엄청난 재산가이며 그 유산을 물려주고 가신 분들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작고한 이후 개신교는 중흥기(中興期)를 맞아 신도 수가 훨씬 많아졌고, 불교계의 원로이신 성철스님은 열반(涅槃) 뒤 불교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길 자체가 달라졌지요.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부터 재산을 물려주기 시작, 신도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습니다.
 
세 분이 떠난 자리의 향기는 예수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했던 분에 그친 게 아니라 예수님과 부처님의 삶을 지금 여기서 그대로 살아보자 했던 분들입니다.
성철스님은 쌀 씻다 쌀이 한 톨 떨어지면 불호령을 내리기로 유명하다지요.
세 분은 일생동안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을 널리 펴고 실천하면서도 다른 종교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도 말씀한 적이 없는 분들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성철스님의 부음을 접하고, 누구보다도 먼저 조전(弔電)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한국 종교계를 일컬어 복(福)이 많다고들 말하지요. 오늘의 시끄러운 문제들을 멀리 나가 풀려고 하지 말고 고개를 돌려보면 이 세 분의 얼굴이 보이고, 고개를 숙이면 그 분들의 생애가 펼쳐집니다. 이제 이 세 분의 발자취가 남긴 흔적만 따라가도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문이 활짝 열려있답니다.
-이 글은 조선일보 강천석 주필의 글을 옮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