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의 길

작성일
2009.10.21 09:53
등록자
이형문
조회수
1254
 
나는 가끔 곁에 티 없이 맑고 천사같이 곱게 잠든 아내를 유심히 바라보며 살아온 구비 구비 인생길을 뉘우쳐봅니다.
어느 날 집에서 작업복차림에 일하다말고 친구들에 끌려가 만나본 여인이 인연되어 한 평생 동반자가 되어 벌써 46주년을 맞는 해 입니다.
아마도 부부의 인연은 하느님의 섭리로 맺어지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시 아내는 교직생활 때였습니다.
달덩이 같이 곱던 아내의 그 얼굴이 어느 덧 주름진 얼굴과 솜솜이 희어버린 머리칼을 바라보며 인생무상을 느껴봅니다.
사람마다 인생길 살아가노라면 힘들고 지치기 마련입니다.
돌이켜보면 참 유달리도 아내에 못할 짓 많이 시켰고 지질이 고생만 시킨 잘못을 뉘우쳐봅니다.
그 힘든 일 마다않고 묵묵히 견뎌온 대견스런 당신을 바라보며 어려운 고비마다 때로는 말벗이 되고 친구가 되어 좌절하지 않도록 용기를 심어줬던 아내, 그런
잠든 아내를 찬찬히 바라보며 왜 내가 좀더 잘 해주지 못하고 그렇게 집안을 돌보지 않고 딴 짓 하며 고생을 시켰을까 라고 반성해 봅니다.


젊을 적 무역업을 한창 열심이 하던 어느 해 40대 초반 일본에서 대문짝만하게 난 신문기사 내용을 읽으며 큰 충격을 받고 나의 인생길이 360도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그 해의 저축 왕으로 뽑힌 80세 가량의 할머니 노숙자가 추운 겨울 어느 집 처마 밑에서 얼어 죽은 커다란 얼굴사진 모습이었습니다.
죽은 할머니 몸속에서 주머니 하나가 나왔는데 몇 십만 엔의 저금통장과 한장 한장 꼽쳐 모아둔 지폐와 동전까지 나왔는데 그 속에 작은 쪽지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이 돈을 써 주세요"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 할머니 시신을 부검해보니 얼어서 죽은 게 아니라 못 먹어 굶어 영양실조임이 밝혀져 이 장한 할머니는 금융계에서 합동으로 장례까지 치러 줬다는 신문기사 내용이었습니다.
이 삭막한 세상인심에 경종을 울리는 기사였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여러 번 읽고난 후 그 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이 형식적이고 껍떼기 인생이듯 헛 살아온 부끄러운 삶이였음을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그 할머니처럼 흉내라도 내보며 살고 싶어 이후 실천하다보니 나와의 싸움을 20여년 넘게 표시 없이 조용히 고생을 감내하며 살아 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다보니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 밑 빠진 독에 물 붙기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남들은 돈 번다고 야단인데 난 돈 내 버리는 일만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당연히 빈 털털이 꽝인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제가 쓴 "흔적을 남긴 유산"이란 책 속에 적어놨습니다.
그중 한 가지 들춰보면 없는 사람 딱한 빚보증을 서다보니 나중엔 내가 살던 집까지 압류되어 길거리에 나앉아 비참하게 쫓겨나기까지 했던 추운 겨울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진 게 없어도 지나온 일들을 뒤돌아보면 마음이 부자이고 흐뭇하여 부자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듯 그것은 이날까지 아내와 자식들까지 모두가 잘돼 편히 살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며 건강을 지켜주신 하느님에 감사할 뿐입니다.
또 생면부지 초행길 강진 땅에 인연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군수님께도 진심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비바람 눈보라치던 지난날의 오뚜기 인생의 만고풍상이지만 아내는 고생 속에 자식들을 훌륭하게 성장시켜준 것에 대해 마음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남은 생을 위하여 이렇게 살기 좋은 자연경관의 강진에서 우리가 마지막 죽음의 다리를 건너는 날까지 내 온 정성을 다 바쳐 아내의 손을 꼭 잡고 행복한 사랑의 기도를 올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