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생각나는 사람

작성일
2009.10.08 20:42
등록자
이형문
조회수
1378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갈대밭 억새풀들이 나풀되는 사색의 계절
묻혀버린 기나긴 세월인데도 마치 고질병이 도지듯 붉게 옷을 갈아입는 단풍철만 되면 무슨 향기를 내 뿜듯 내 가슴에 살포시 다가와 지워지지 않고 둥지를 틀며 퍼지듯 되살아나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남겨둔 그 여인과의 마지막 이별의 아픔처럼 그 여인도 지금쯤 가을이 되면 순수하면서 아름다웠던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있을 인연 이였기에 그리움의 늪에서 가을이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밀물처럼 가슴깊이 밀려옵니다.


우리나라가 1970년 초 일본과 국교가 정상화되었을 무렵 나는 무역업을 하고 있었던 때라서 비즈니스 여권을 발급받는 행운을 얻어 일본을 자유로 왕래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는 서울 김포공항에서 일본 동경 하네다 공항이 개설되어 1시간 50분정도의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져는 일본어를 해방이 되던 당시 초등학교 4학년까지 공부했던 실력 이였으나 그나마 이후 수십 년을 사용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해본 일본어였습니다.


공항에 내려 택시 기사에게 서툰 말솜씨로 동경시내 조용한 호텔안내를 부탁했더니 친절하게 동경 한복판 지금의 히로히토 천황이 거처하는 니쥬바시 근방 아늑한 숲속 고풍스런 훼야몬드 호텔이었습니다.
3층 방을 정하고 짐을 풀어놓고 구경삼아 도보로 무작정 30여분 걸어 가다보니 동경의 중심지 유락구죠와 긴쟈 거리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한국보다는 모든 면에서 20여년 이상 앞서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지하철과 전철 그리고 고가도로와 독규센이라는 급행이 오가는 복잡한 거리 하나로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때마침 거리가 러시아워 시간이라 샐러리맨들이 퇴근시간이 되니 밀물처럼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높은 빌딩 숲들의 간판들마다 오색찬란한 네온싸인 불빛들이 밤거리를 황홀하게 밝히고 상가들마다 북적거리며 화려하게 고객들을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닦쳐버린 어둠의 밤거리다보니 호텔로 가는 길의 방향감각을 잃어버려 혼자 이곳저곳을 서성이고 있을 때입니다.
때마침 지나는 한 여인에게 다가가 호텔 가는 길을 물었더니 그쪽에 자기 집이 있어 가는 길이니 같이 걸어가자고 합니다.
40여분 거리를 함께 걸으며 이 여인의 신상을 물어보니 와세다대학 3학년이고 이름은 가네꼬라고 했습니다.
단풍이 짙게 물든 늦가을 친절한 애교의 말솜씨와 마음씨까지도 고와보이는 아주 미모가 뛰어난 얼굴이었습니다.
배관관련 업무와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지 못했던 컴퓨터 재료와 기판 등의 연결 사업관계로 보름정도 머물게 되는 동안 방학 중이던 이 학생의 언어 가이드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외 시간에는 이 학생과 관광지 온천으로 유명한 하꼬내온천, 닛꼬온천, 아타미온천 추억을 잊을 수 없는 늦가을 풍경으로 안내 받았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아타미온천의 경우 벼랑 끝에 노천 온천으로 시설돼있었는데 앞에는 망망대해 태평양이 바라다 보이고 뒤로는 유명한 눈 덮인 후지산이 바라보였습니다.
마치 그때당시 온천욕이 신선이 노닐며 즐기는 기분이었습니다.
뒷날 신간선 고속열차 고담 아랫샤를 타고 다시 동경 시내로 돌아와 이 학생과 즐기려 들어간 빠찡꼬장에서 777이 쏟아져 일본돈 3만7천 엔을 딴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학생 가네꼬의 도움으로 이후 일본에 갈 때마다 사업이 잘되어 선물을 하나 하고 싶다고 말하라했더니 한복이 입고 싶다고 해서 당시 서울에서 한복을 한 벌 지어 선물했더니 너무 좋아했습니다.


이 학생은 해운국에 근무하는 청년과 결혼을 하여 딸을 낳은 후 남편과 함께 단풍이 짙은 가을에 경주관광을 온다하여 내가 직접 가이드 해준 일이 있습니다.
국경을 초월한 순수한 정의 만남으로 맺은 인연이었기에 이 가을만 되면 잊혀지지 않고 되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