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세이> 가을낚시

작성일
2009.09.20 14:57
등록자
이홍규
조회수
1248
이홍규 / 향토문학작가   /  저서 : 모란꽃소년, 천년의 약속


아침과 저&45378;으로 찬기운이 제법 느껴지는 9월로 접어들었다. 한낮의 온도는 여름의 무더위를 느끼게 한다. 나른한 오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낚시가방을 챙겨 차에 올랐다. 낚시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배를 빌려 푸른물결 넘실거리는 먼 바다로 가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못되어 멀지않는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를 향해서 차를 달렸다.
 
 차창 밖에는 푸른들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벼 이삭이 여물어 가고있었다. 하루종일 허수아비가 홀로서 들판을 지키며 짖궂은 참새들과 실랑이 하고있다. 작은 마을앞을 지나가는데 가을 햇볕에 붉은 고추가 유난히 해볕에 반짝이며 분주한 농부들의 손길은 고추를 수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신전면의 들길을 지나 해남군 북일면 도로표지가 빠르게 지나가고 한적한 면소재지 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없고 그저 한산하기만 하다. 예전에 좌일장날 이면 인근의 신전,북일,남창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렸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어 장도 서지 않고있다. 밭에서 참깨를 터는 할머니의 얼굴은 가을햇살에 검게 그을렸지만 객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보내시려는 생각 때문이지 더위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좌일을 지나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려가니 갯내음이 가득한 남창교차로 신호등앞에 멈춰섰다. 좌측은 완도가는길 우측은 땅끝가는길 표지가 운전자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이윽고 신호가 바뀌어 해안도로를 향해서 차를 돌리니 가을햇살에 속을 드러낸 갯벌위로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남창의 갯벌은 풍부한 해산물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해질무렵이 되면 낙지와 반지락과 물고기를 팔고사는 사람들로 붐볐다.
 
 육지와 섬을 연결한 남창다리 밑에는 물살이 힘차게 흐르고 완도군 표지가 반겨준다. 남창다리 너머는 달도라고 부르는데 작은 섬의 모양이 둥근달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달도의 바닷가에는 갈대가 가느다란 바람결에 흐느적 거리고 배고픈 갈매기들이 무리를 지어 이리저리 공중을 배회하고 있었다. 달도를 지나 본격적인 완도의 관문이라 할 수있는 원동대교에 이르렀다.
 
 원동대교 옆의 주차장에 차를 멈추고 낚시가방을 꺼내 지금은 차량과 사람의 통행이 멈춰진 철교위에서 푸른물살을 향해서 낚시바늘을 던졌다. 이곳이 물때만 잘 맞으면 고기가 많이 잡혀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다리를 가득메운 사람들은 저마다 푸른바다를 응시하며 행여 월척이라도 낚을 꿈에 젖여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성질급한 사람은 절대 낚시를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느긋하게 기다리는 인내심이 없이는 물고기를 낚을수 없다. 먼옛날 중국의 강태공이 낚시로 소일하며 있는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이 그 연유를 묻자 세월을 낚고 있다는 대답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 처럼 차분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깊은 바닷속 물고기도 쉽게 바늘에 걸린 먹이를 먹으려고 덤비지 않는다. 자칫 잘못 하다간는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번 입질을 하다가 안심이 되면 그때서야 입을 크게 벌리고 먹이를 문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터득한 것이리라. 푸른물결은 쉼없이 조류를 이루며 머나먼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물결의 흐름을 따라서 물고기도 이동하는지 아니면 자기들만의 거처에서 몸을 숨기고 움직이지 않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나온 낚시라고 그런지 가만이 앉아서 낚시줄을 바라보는것이 무료하게 느껴진다. 저 멀리 다리건네 원동의 선창가의 가로등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고 불빛은 바닷물결에 일렁인다. 맞은편 다리위에는 완도읍에서 활어를 가득싣은 차들이 시각을 다투며 질주를 하고있다.

철교의 다리난간을 가득메운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겨우 다섯명의 강태공들이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오늘은 물고기와의 인연이 안 닫았는지 아무런 수확이 없어서 하는수 없이 낚시대를 접고 짐을 챙겼다. 강진에서 함께온 일행이 좀더 기다려 보자고 하지만 얼른 자리를 뜨자는 성화에 못이겨 낚시대와 도구를 가방에 넣었다.
 
 이왕에 낚시를 하러 왔는데 물고기 구경이라도 하자며 원동의 횟집에 들렸다. 횟집안에 들어서자 다리난간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정담을 나누며 아쉬움을 나누고 있었다. 광어한마리를 주문하고 일행들과 바다낚시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경험담을 주고 받았다.  얼마전 마량 방파제에서 큰 고기를 낚아 그자리에서 회를 떠서 먹으며 바다의 진미를 맛보았다는 이야기와 금일도 갯바위의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윽고 큰 접시위에 농어의 속살이 가득히 올라와 젖가락을 분주히 움직이며 초록의 겨자와 붉은 초장사이를 오가다 입속으로 감추며 허기진 배를 달랬다. 생존을 위한 본원적 배고픔 보다는 바다를 벗삼아 자연과 하나되는 물아일치(物我一致)의 기쁨 때문에 이렇게 바다를 찾는것 같다는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수족관에서 우리를 기다리다 살신성인(殺身成仁)한 농어에게 잔을 들어 위로를 보내고 마지막 남은 뼈를 매운탕으로 승화한 그 넋을 기리며 민생고를 해결했다.
 
 자판기가 컵을 내밀자 가을향기를 머금은 커피잔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커피향을 음미하며 선창가 가로등 밑에서 서늘한 바닷바람을 맞는다. 어둠이 깊게내린 원동의 선창가는 물결소리와 실바람의 속삭임을 들을수 있었다.
 
 아쉬움의 여운을 뒤로한채 떠나온 길을 불빛을 비추며 어둠을 헤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칠흑같이 어둠에 잠긴 세상을 비추는 희미한 별빛이 우리를 인도하는듯 했다. 마치 동방박사 처럼 별빛이 흘러가는 곳으로 달려가다 보니 어느새 강진읍에 도착해서 함께온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푸른 바닷물결이 부르는대로 낚시대를 들고 떠나는 강태공들은 어쩌면 질기고질긴 인연이 맺어졌기에 주말만 되면 새벽어둠을 헤치고 바다를 찾아 떠나는것 같다. 일년에 한두번 정도 낚시대를 만져보는 필자는 지인(知人)들과 어울려 따라가는 아주 초보수준이다. 낚시줄을 던지고 푸른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나 물속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으면 지루하고 따분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어쩌다 물속에서 낚시줄을 당기는 느낌이 있을때는 손에서 짜릿한 전류가 흐른다. 물고기와의 힘겨운 사투를 끝내고 어망(魚網)에 팔뚝보다큰 고기를 넣을때 그 기쁨은 천하를 얻는것 같았다.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걷는데 길섶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사르르 들려온다. 동네어귀에 들어서자 느티나무에 걸린 둥근달이 산들바람에 흐느적 거린다. 도란도란 가을이야기가 가득한 돌담이 있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하루종일 주인을 기다리던 누렁이가 마중나와 꼬리를 흔들며 반겨 맞아준다. 낚시가방과 빈 어망을 내려놓자 아이들은 아무런 질문이 없다. 하루를 자연과 벗삼아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심오한 수련(修鍊)을 마치고 돌아온 부친에 대한 경외심 때문인것 같다.  지난번 마량 포구에서 어망을 가득채워 왔을때는 기쁨의 미소가 가득하더니 오늘은 침묵의 강이 흐르고 있을뿐이다.
 
 오늘은 빈손으로 왔지만, 다음주 토요일에는 온 가족이 함께 도시락을 싸서 갈대가 우거진 만덕리 해창에 가서 문저리를 낚으며 행복한 시간을 꼭 만들고자 한다. 아마 그때쯤 이면 갈대밭의 물새와 살이오른 문저리들이 가을을 아쉬워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