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이야기> 옹기장이의 꿈

작성일
2009.09.06 09:31
등록자
이홍규
조회수
1342
 
 



햇살이 서산을 넘어가는 봉황마을 갯벌은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바작에 부드러운 진흙을 한 짐 지고 황노인은 뉘엇뉘엇 햇살이 흐려지는 산길을 내려온다. 찰지고 부드러운 흙을 찾기 위해 하루종일 봉황리 뒷산을 찾아 헤매던 황노인은 밤나무골 수렁논 옆에서 황색의 흙을 발견하고 흙을 퍼서 바작에 채우고 내려오는 길이다.


 집에 도착하여 옹기 작업장에 진흙을 퍼놓고 커다란 나무떡매로 진흙을 떡을 치듯이 친다. 진흙도 반죽이 잘되어서 그런지 왠만한 밀가루 반죽보다 더 찰기가 있다. 떡매치기가 끝나면 황노인은 진흙을 발로 힘있게 밟으면서 흙의 숨을 죽인다. 흙도 숨을 쉬는 존재라서 숨을 죽인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황노인이 옹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50년이 넘었다. 황노인이 젊었을 때만 해도 칠량면 봉황리는 마을 전체가 옹기를 구워서 생활을 했다. 봉황마을의 옹기가 구워지면 돛단배에 옹기를 가득 싣고 마량항을 거쳐 멀리 제주도와 인근의 완도에 가서 판매를 했다. 단단하고 그릇을 오래쓸 수 있어서 강진의 봉황옹기를 제주도 에서는 가장 알아주었다. 옹기를 판매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쌀이 많이 나오는 마을에서는 쌀과 교환하고, 수산물이 많이 나오는 완도의 섬마을에 가면 햇김과 건어물로 교환해와 강진장날 나가서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 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옹기를 굽는 집이 점점 줄어들었고, 마을의 많은 젊은이들이 서울로 떠나 옹기를 굽는 집은 황노인과 친구인 정노인 두집 뿐 이다. 옹기 만드는 일은 젊어서는 할만 했으나 이제는 기력이 떨어져 옹기 만들기가 힘들다.


 벌써 일주일째 방에 드러누워 거동을 못하는 정노인집을 찾은 황노인은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보게 친구 어서 기력을 회복하여 옹기 굽는 일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정노인은 황노인의 손을 굳게 잡고 "난 이제 얼마 못살 것 같네, 옹기 굽는 일을 젊은 사람들이 하지 않으려 해서 명맥이 끊어질까 걱정이 되네, 자네가 봉황마을 옹기의 맥을 젊은 사람에게 전수해 주게" 황노인은 친구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온 죽마고우가 병환으로 드러누워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이제 자신도 세상에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는 것에 대한 서글픔이 가슴한곳에 가득했다. "친구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봉황옹기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전승을 하겠네 그러니 어서 기운을 차리게" 정노인 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집으로 돌아온 황노인은 옹기공방의 물레앞에 앉아 말을 잊은 채 눈시울을 적신다.


 평생 옹기를 만들며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를 해본 적이 없었고 열심히 살아 왔는데 전통 옹기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있어서 걱정의 먹구름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옹기를 만들어 4남매를 키우고 가르쳐 왔는데, 산업화사회로 발전하면서 전통옹기는 점점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겨우 명맥만 유지해 왔다. 자식들은 옹기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이제 편하게 살아가시라고 말했지만 황노인은 평생을 해온 일이라서 차마 그만둘 수가 없었다.


 한참은 깊은 생각 속에 잠기고 있는데 밖에서 큰손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저 영동이 왔어요"
오랜만에 들어본 큰손자의 목소리에 황노인과 부인은 손자를 껴 앉으며" 아이고 내손자 영동이 왔구나
이게 얼마만이냐 아이고 내새끼" 영동이를 반겨 맞았다. 안방으로 들어온 영동이는 황노인 부부에게 큰절을 올리고 그동안의 안부를 여쭈었다. 황노인과 부인은 장성한 손자의 늠늠한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


 영동은 점심식사를 마친 후 차를 마시면서 조심스럽게 이여기를 꺼냈다. "할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도자기를 전공하고 졸업후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는데, 도자기와 옹기에 대해서 더 깊이 연구하고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할아버지가 하시는 전통옹기를 전수받아 그 맥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황노인은 손자의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영동아 전통옹기 만드는 일은 큰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큰 비전도 없어서 너에게 해보라고 적극 권하지 않았다. 너도 이제 스물여덟의 어른으로서 네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할 나이가 되었다. 이 할아버지한테 이 말을 꺼내기까지 많은 생각과 고심을 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네가 이일을 전수하고 한다면 힘 닫는데 까지 가르쳐 주마" 황노인은 손자의 손을 잡으며 대견스러워 했다.


 황노인은 손자에게 좋은 옹기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좋은 흙을 고르는 법과 흙을 다루는 기초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흙은 옹기장이의 손과 발의 힘과 기운으로 잘 반죽하여야 찰기가 있고 그늘에서 잘 말려야 한다. 그리고 가마에서 구울 때 불 조절을 잘해야만 윤기가 흐르는 매끈한 옹기가 나온다. 옹기를 만드는 과정이 말로는 쉬우나 옹기장이의 혼이 담기지 않으면 좋은 옹기가 나오기 어렵다. 황노인은 손자가 옹기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리 흡족해 하지는 않았지만, 배우려는 열정과 조금씩 기술이 늘어가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영동이가 직접 만들어 구운 옹기를 보니 불 조절을 잘못하여 옹기가 매끄럽지 못하고 단단하지 못했다. 황영감은 영동이 보는 앞에서 나무망치로 옹기를 깨뜨렸다. 영동은 내색은 안했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이 가득했다.


 황노인은 영동에게 "방금 내가 깨뜨린 옹기는 내 마음속에서 지워버려라. 만약에 네가 만든 옹기를 고객이 구입하여 사용하다가 옹기가 망가진다면 너는 믿음과 명예와 너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네가 처음 만든 옹기를 깨뜨린 것이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말아라" 충고의 말을 건네주고 밖으로 나갔다. 영동은 황노인의 말을 되새기며 불을 조절 하는 것에 대하여 그동안 보고 배운 것을 공책에 정리하며 자기의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해서 많은 고심을 하며 연구에 전념했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옹기연구에 대해서 몰두하여 밥 먹는 것을 빼고는 여러날을 매달렸다. 옹기를 만드는 기술은 모두 터득 했는데 불을 다루는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여, 번뇌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영동이 봉황마을에 내려온지 1년이 다되어가고 전통옹기의 맥을 잇는 영동의 소문은 지방신문을 통해서 널리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황노인은 이제 불을 다루는 기술을 전수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어 영동을 불러 화목 가마에 옹기와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게 했다. 처음엔 약하게 불을 지피고 열기가 고르게 가마 안에 퍼지면 불의 세기를 강하게 온도를 일정시간 동안 고르게 유지 시킨 후 서서히 불의 온도를 낮춰가는 전 과정에 대해서 전부 설명해 주었다. 영동은 평생 동안 황노인이 터득한 기술에 대해서 전수를 받으며 고집스럽게 전통옹기의 맥을 이어온 할아버지의 장인정신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황노인은 영동에게 "옹기장이는 옹기를 굽기 전에 마음과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한다. 부정한 생각과 언행을 했으면 모든 것을 깨끗이 씻은 후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면 옹기를 굽는다"고 말해주며 황노인을 능가하는 좋은 옹기를 만들 것을 당부했다.


 마을이장의 긴급방송 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봉황마을 주민 여러분께 알려 드립니다.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시던 정봉환 어르신께서 두시간전에 별세 하셨습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정봉환 어르신의 장례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많은 협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죽마고우인 정노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황노인은 복받치는 눈물을 주체 못하며 통곡을 했다. 분향소를 찾아가 영정앞에 향을 피우며 먼저 떠나간 친구에 대한 슬픔을 눈물로 대신했다. "이 사람아 자네가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가다니 너무나 섭섭하네.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며 우정을 키워왔는데 오늘 자네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 하네" 말을 잇지 못하고 통곡하는 황노인을 가까스로 부축하며 마을 사람들은 위로를 했다. 삼일 째 되던 날 서글픈 상여소리가 봉황마을 바닷가 갈대밭을 울리면서 북망산천을 향해 걸어간다. 한번가면 다시 못올 머나먼 길을 떠나가는 친구를 먼발치에서 배웅하는 황노인은 시야에서 상여가 사라질 때까지 마루에 서서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웰빙 열풍을 타고 건강에 대한 사람들이 관심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옹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옹기로 만든 뚝배기,컵,그릇,장단지에 대해서 연일 TV에 소개되어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영동은 옹기를 납기내에 납품하려고 눈코 뜰새 없이 분주하게 일에 매달려야 했다. 옹기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전통방식으로 현대인의 쓰기에 편리한 재품을 개발해야하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영동은 서울에 옹기를 납품하러 가는 길에 과천에 있는 문화재청을 방문하여 청장님 면담을 요청했다. 청장님을 만난 영동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전통옹기의 맥을 이어야하므로 자신의 할아버지 황노인을 전통기능전수 보유자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영동의 말을 차분히 들은 유홍준 청장은 영동에게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전라남도 강진 칠량면 봉황마을에 예전에 가 본적이 있습니다. 그때 봉황마을에서 옹기를 만드시는 분이 두 분이 계셔서 그분들과 옹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한분이 얼마 전에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참 안타깝더군요. 손자분께서 우리 전통을 이어가신다고 하니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 문화재청 에서도 전통기능전수 보유자 지정을 하려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참 잘됐군요.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여 문화재청에 신청하세요"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강진과 매우 인연이 깊다. 성균관대교수로 재직시 &039;나의 문화유산답사기&039;라는 책을 통해서 전남강진을 남도답사일번지로 소개하여 전국에 강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책을 저술을 위해서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답사하며 직접 자료를 모으고 잘 알려지지 않은 그 지방의 전설과 이야기등도 수집하여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서울에 들려 거래처를 방문하여 옹기를 납품하고 거래처 사장들을 만나 요즘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플라스틱과 금속그릇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건강을 생각하여 전통옹기를 많이 찾아서 식당들도 옹기그릇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영동은 서울에 온 김에 서울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식당을 들려 그 집 음식을 먹으며 사용하는 그릇을 보니 모두 옹기그릇 이었다. 재래시장과 먹자골목 등을 두루 찾아다니며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한 영동은 다시금 강진으로 발길을 향했다.


 강진으로 내려온 영동은 마을에 도착하여 집에서 두문불출 하며 PC앞에서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업계획을 작성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작성했던 사업계획서를 수십 번 고치고 또 고치고 고심하며 어렵게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사업계획의 내용을 살펴보면 봉황마을을 전통옹기마을로 지정하여, 도시민들이 찾아와 체험하는 체험프로그램과 체험시설을 확충하고, 전통옹기를 현대인들이 사용하기 편기하게 만들 수 있도록 제작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한 내용이었다. 영동은 자기가 작성한 사업계획서가 정부의 법규정에 적합한 사업인지 여러번 법규정과 대조하며 사업계획서를 수정 보완했다.


 농촌체험분야에 대해서는 농협군지부의 팜스테이 업무 담당자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사업계획서를 읽어본 담당자는 " 참 내용과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봉황마을의 장점을 최대로 살린 옹기만들기 체험을 프로그램으로 개발한다면 반응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힘 닫는데 까지 도와 드리겠습니다." 농협의 담당자는 강진에서 오랫동안 농촌체험관광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하며, 농업인들을 지도해 왔으며 농촌관광사업에 미친사람 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열성적인 사람이다. 그는 농촌관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군수님께 이메일을 보내 농촌관광전문인력을 육성하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야한다고 건의하였다. 그가 보낸 이메일을 읽어본 군수님은 타당성을 검토하고 교육수요조사를 마친 후 녹색대학이라는 과정을 신설하여 3년 동안 150명의 전문가를 배출했다.


 서른세살의 젊은 청년인 영동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농협군지부 담당자는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자신은 저 나이 때 먹고살기 바빠 깊이 생각하지 못했고 열정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노력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신을 반성했다. 비록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사람 이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서 뭔가가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협담당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영동은 군청으로 향했다. 군청문화광광과에 들려 실무자와 상담을 하고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 군수실에 들려 군수님 면담을 요청하여 군수님을 만났다. 항상 열린 군정을 표방하며 군민과 대화나누기를 좋아하는 군수님의 모습은 마치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감이 느껴졌다.


영동은 군수님께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이 면담을 요청한 사유와 목적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영동의 설명을 들은 후 군수님은 문화관광과장과 실무자를 불러 동석한 자리에서 농촌체험마을 육성과 지원정책에 대해서 함께 설명 하도록 했다.


군수님은 젊은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에 격려를 보내며 말문을 열었다.
 "금년도는 농촌체험마을 육성사업이 끝났기 때문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시면 내년도에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겠으며 영동씨도 녹색대학 과정을 수강해서 많은 것을 배우세요" 영동은 대학교 재학시절 당시 교수님 이었던 군수님의 강의를 교양과목으로 수강한 적이 있다고 말하며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군수님은 제자를 만난 기쁨에 흐뭇해하며 등을 두드리며 열심히 하라고 재차 격려했다.


 군수님 면담을 마친 영동은 봉황마을로 돌아와 할아버지께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황노인은 영동의 생각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해보라고 어깨를 다독거렸다. 황노인은 영동을 데리고 이장집을 찾아갔다. "박 이장 있는가? 나 황영감 일세" 이장은 황노인과 영동을 반겨 맞았다."어르신 어쩐 일이십니까? 어서 들어 오십시오" 황노인은 이장에게 말을 꺼냈다. "자네도 잘 알고 있듯이 우리 봉황마을은 예로부터 전통옹기를 만드는 마을일세.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모두 마을을 떠나 도회지로 나가고 없어 전통옹기의 맥을 전수할 사람이 없네. 다행이 내 손자가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옹기를 만들겠다고 하니 맥은 이을 수가 있게된데 그래서 우리 마을을 전통옹기 농촌체험마을로 만들어 도시사람들이 찾아와 옹기만들기와 농촌체험과 농산물직거래를 통하여 활력이 넘치는 마을을 만들고 주민소득도 높이자는 사업을 하자는 것일세" 황노인과 영동의 설명을 들은 이장은 마을주민 총회를 열어 의견을 물어보자고 말했다.


 박이장은 황노인과 영동이 돌아가자 방안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농촌체험마을을 운영하자는 취지는 좋으나 막상 마을을 운영하려면 시설과 비용이 많이 소요될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은 고심에 잠겼다. 일단은 영동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방송을 통해 마을 총회를 소집한 이장은 주민들에게 농촌체험마을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물었다. 주민들은 생소한 사업에 대해서 의아해 하면서 마을발전을 위해서라면 적극 협력하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듬해에 봉황마을에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었다는 군청의 문서를 받은 영동은 마을운영위원장을 찾아가 체험관 건립에 관해서 의논을 하였다. 마을회관 옆에 부지를 매입하여 체험관을 건립하기로 의견을 모아 업자를 선정한 후 공사에 착수하여 6개월 만에 완공하였다. 체험관을 완공한 후 전통옹기봉황마을&039;개장 행사를 열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봉황마을에서 가까운 대구면 사당리 청자도요지 에서는 매년 청자문화제가 개최된다. 12일간 열리는 청자문화제 기간동안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청자도요지는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다양한 볼거리와 행사로 알차게 꾸며져 있다. 영동은 청자문화제 옹기체험 부스에 나가 아이들이 옹기를 직접 만들 수 있도록 지도했다. 처음 진흙을 만지며 물레를 돌리는 아이들은 무척 신기해하며 즐거워한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은 생활옹기를 많이 구입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