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이야기) 시를 사랑한 사람들 <2>

작성일
2009.08.04 11:26
등록자
이홍규
조회수
1286
 
영랑은 어릴적 다녔던 학당으로 갔으나 문이 잠겨있었다. 정용철 선생이 독립군이 되기위해 만주로 떠난후 지금까지 잠겨져 있었다. 잠긴문을 열고 학당에 들어서자 수북이 쌓였던 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민족독립에 대한 정신을 심어주던 정용철 선생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교실엔 그리움이 가득 했다.


창문을 열고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내고 걸레로 학당을 깨끗이 청소 하니 제법 옛날의 모습을 되찾았다. 학당을 다시열어 한글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학당 문을 나오려는데 경찰서 순사가 다가왔다.


“당신은 누구인데 폐쇄된 학당에서 나오는가?”


“예 저는 이곳 학당에서 공부를 했던 영랑 이라고 합니다. 다시 학당을 열어 야학을 하려고 합니다.”


“뭐 야학을? 당신 정용철 이랑 어떤사이야? ”


“어릴적에 야학에서 저를 가르친 선생님 입니다. 지금은 그분이 안계셔서 제가 학당을 직접 운영하고자 합니다.”


“그래 학당에서 민족독립이 어쩌니, 해방이 어쩌니 이런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면 너를 바로 구속하겠다. 명심해라!”


긴칼을 찬 순사는 경고의 말을 남기고 유유히 언덕을 내려갔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우리의 글을 가르치고자 하는데 왜놈들의 간섭을 받아야 하는것에 대하여 심한 분노를 느겼다.


집에 돌아와 학생들 가르칠 학습도구를 챙겨 학당으로 가다가 현구를 만났다. 석양을 등에 업고 자전거를 힘없고 타고오는 현구는 영랑이 보따리를 들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영랑아 너 어디로 가는 길이니?”


“학당에 가는길이야. 다시 학당을 열어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려고 해”


“그래 그거참 좋은 생각이구나. 나는 읍사무소 다니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그런 생각을 못했다.”


영랑과 현구는 학당이 있는 언덕을 걸어갔다. 어두운 학당에 등불을 켜니 불빛은 남성리 됫동산을 밝혔다. 내일부터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므로 영랑은 한글교재를 등사기로 인쇄하여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 읍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주막집과 시장통에 한글야학교를 연다는 벽보를 붙였다.
읍내 장날 장터에 가서 한글을 배우고 문맹을 퇴치 해야한다고 외치면서 야학에서 공부할 사람을 모집한다고 외치고 다녔다.


학당으로 돌아와 한숨 돌리고 지그시 눈을감고 생각속에 잠겼다. 희망을 잃어버린 이시대의 아픔과
우리의 말과글을 맘놓고 쓰지 못하는 현실앞에 눈물겨워 했다.


펜을 들어 답답한 억압의 현실을 벗어나 강물처럼 힘차게 흘러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를 써 내려갔다.




  내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해가 뉘엿뉘엿 저물자 학당이 있는 언덕을 향해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랫동네에 사는 박서방네 큰딸 혜숙이와 둘째 혜자가 동네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왔다.


“계세요? 선생님 계세요?”


“어서들 오너라 너희들 야학에 공부하러 왔느냐?”


“예 저희들은 아래동네 사는 아이들 입니다. 야학에서 한글을 가르쳐 준다고 해서 까막눈을 면하려고 왔어요.”


열명의 소녀들은 영랑이 칠판에 쓴 글씨를 따라서 읽으며 글을 깨우치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연필로 열심히 공책에 글씨를 쓰는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다음날은 학생수가 더 늘어났다. 한글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찾아와 배움에 대한 향학열을 불태웠다.


“여러분 조선사람은 조선의 말을 글로쓰고 읽을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왜놈들 밑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말과 글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서울에서 공부를 많이한 영랑 선상님이 이렇게 저희같이 비천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글을 깨워쳐 주신께 참말로 고맙구만요. 인자는 이름 석자를 한글로 쓰게 된께 이 늙은이는 죽어도 여한이 없구만요“


“배움에 빈부 귀천이 어디있습니까  자 칠판을 보시고 저를 따라 하세요. 기윽,니은,디긋,리을,미음,비읍......”


경찰서 순사가 학당의 창문너머로 영랑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영랑이 시문학에 능통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시문학에 심취한 청년들의 귀에 들어갔다. 광주에서 사는 박용아와 이현구가 영랑을 찾아왔다.


“영랑 선생님 계십니까?”


“누구십니까? 제가 영랑 입니다.”


“반갑습니다. 저희는 선생님의 명성을 듣고 광주에서온 박용아와 이현구라고 합니다.”


영랑의 연락을 받은 김현구가 영랑의 집에 찾아오자 네사람의 문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박용아는 순수 서정시를 사랑하는 젊은 청년들이 함께 동인지를 만들어 활동해 보자는 제안을 했다.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시문학을 사랑하기에 희망을 잃은 이시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 우리의 시작품을 펼치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함께 시문학 동인지를 만듦시다.”


“정말 좋으신 생각 입니다. 우리가 이곳 강진에서 시문학 동인을 결성 했으니 이름을 ‘강진파 시문학회’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다른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모두들 ‘강진파 시문학동인회’의 탄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매달 한번씩 모여서 회원들이 직접지은 시작품집을 만들었다. 현구는 영랑과 함께 읍사무소 등사실에서 등사기로 인쇄하여 끈으로 묶었다.  동인지를 한글학당 학생들에게 나눠주며 시를 읽고 쓰게했다. 조선의 말로된 시를 읽고 쓰는 학생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