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이야기> 천년의 약속

작성일
2009.07.16 11:58
등록자
이홍규
조회수
1340
 
수평선 너머 햇살이 반짝이는 월주항엔 무역상선의 선원들이 분주하게 짐을 싣고있다.
해상 무역을 하는 거상 류대평 대인은 출항을 앞두고 태풍이 온다는 말에 상단의 객주와 선장을 불러놓고 출항을 언제 할것인가 대책을 의논 하고 있다.
“오늘 상단의 객주와 선장들을 긴급히 모이게 한것은, 항저우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네. 출항일정을 태풍이 지나간 후로 출항 할까 하는데 자네들 의견은 어떠한가?”
대월국 상단의 리원평 객주가 조심스럽께 말을 꺼냈다. “지금의 상황으로 봐서는 태풍이 이곳 월주까지 오려면 십여일은 걸릴것 같습니다. 저희 상단이 지금 대월국 으로 출발을 하면 태풍이 오기전 까지 도착할수 있습니다.“


“리원평 객주의 의견은 출항을 하자고 그러는데, 장웨이 선장 자네는 어떠한가?”
“예 저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대월국은 배로 십일이 소요 되오니 지금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면 고려국 상단의 한평진 객주의 생각은 어떠한가?” 
“제생각에는 고려국으로 가는 상선은 일정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고려국 가는 뱃길은 물살이 빠르고 사나와 오일후에 출발해야 합니다.”


“진허핑 선장은 어떻게 생각 하는가?”
“지금 고려국에서 주문한 청자의 납기를 맞추려면 조금 서둘러서 이틀후에 출발 해야 합니다. 우리 월주에서 생산된 청자의 절반이상이 고려국에 수출되고 있으니, 고려국 수입상들이 원하는 납기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여러 객주들과 선장들의 의견을 듣고나서 류대인은 대월국으로 가는 상단은 출항을 십일후로 미루고 고려국 으로 가는 상단은 삼일후에 출발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류대인님께 보고할 내용이 있습니다.” 
“내게 할말이 있다고? 한평진 객주 말해보게”
“고려국의 청해진 거상 장성석 쪽에서 우리 월주에 사람을 밀파하여 청자도공을 자기나라로 데려 가려고 한다는 첩보가 입수 되었습니다.“


“뭐라고 장성석 이놈이 이젠 청자까지 넘보려 하다니. 이것은 완전히 상도에 어긋난 짓이다. 월주의 항만과 청자공방을 철저히 감시하여 도공을 못데려 가게 하고, 고려에서 온 첨자들을 잡아서 관가로 넘기록 하라”


류대인은 격양된 목소리로 명령을 하였다. 당시 청자는 송나라의 주요 수출품으로 가까운 천축(인도),대월국(베트남),바사(페르시아) 까지 무역을 하여 막대한 돈을 벌었다. 류대인은 월주의 상단을 한손에 쥐고 있는 호족으로 송나라 왕실과는 밀접한 친분관계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할수 없는 사람 이었다.


류대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무장들은 무사들을 이끌고 월주항만을 샅샅히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첩자들이 바사의 색목인들로 가장했을지 몰라 바사에서 온 무역선을 뒤지고 여러나라 에서온 무역선을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객사(客舍)에 들려 낮설은 사람이 있는지 조사하고, 청자공방에 들려 도공들을 모아 수를 헤아려 보고, 혹시나 고려국 상단의 첩자가 오면 즉시 알려 줄것을 부탁하고 갔다.


무장에 돌아와 류대인의 집사에게 보고를 했다.  “집사어른 월주항만과 객사,청자공방을 샅샅히 뒤졌지만 고려의 첩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 긴장을 늦추지 말고 경계를 철저히 하고 항만의 들고나는 사람들을 잘 감시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집사어른” 류대인의 집사 양명충은 상해출신 으로 월주상단의 제2인자 이다.

 이십년전 류대인의 상해와 거래를 하면서 상해상단에서 물동관리와 자금관리를 했던 사람인데 워낙 계산이 빠르고 장사 수완이 뛰어나 그를 발탁 영입했다. 성품이 우직스럽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 상단의 모든일은 양명충 에게 맡겼다.


양명충은 날씨가 심상치 않아 류대인 에게 고려로 가는 상선의 출항을 중지시켜야 한다고 만류를 했으나, 류대인은 청자를 납기내에 납품을 해야 한다며 출항을 강행했다. 월주항에 정박했던 상선은 오일이 지나자 고려를 향해서 닷을 올렸다. 바다는 잔잔이 바람한점도 없이 고요하여 태풍이 올것같지 않았다. 순풍이 불어 배는 순조롭게 월주항을 떠나 황해로 접어들고 있는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선장은 예사롭지 않은 날씨의 변화를 보고 돗을 전부 올려서 배의 속도를 더 빠르게 했다. 배는 강한 사람에 의해서 송나라 해역을 지나 고려국의 해격에 접어 들었다. 짙은 안개와 강풍이 불어 벽란도 쪽으로 방향을 돌리지 못하고 신안의 앞다바로 급히 키를 돌렸다. 가까운 섬에 정박하여 태풍이 멈추면 다시 출발 하려고 했다. 그러나 집채만한 파도가 일어나 금방 이라도 배를 삼킬것 같았다. 거센 파도가 쳐서 배에 많은 물이 들어와 선원들은 물을 퍼내기에 정신이 없었다. 배는 심하게 파도와 바람에 흔들리다 짙은 안개속에 나타난 암초에 부딪쳐 선채는 부서지고 거친파도에 의해서 바다에 가라 앉았다.


태풍은 십일이 넘도록 바다를 요란스럽게 뒤집고 요동을 치다가 서서히 안정을 되찮았다. 고려로 떠난 상선이 난파를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류대인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선원들의 가족들은 월주상단의 문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류대인은 가족들이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후하게 돈을 지불해 주었다. 태풍이 완전히 잠잠해지자 대월국을 향해서 상선은 힘차게 출발을 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월주 바다를 덮은 아침 한적한 해안에 작은 배한척이 도착해 두사람을 내려주고 바다 저편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삿갓을 둘러쓴 두사람은 황급히 해안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길을 걸어다가 지도를 펼쳐 한참동안 지명을 찾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울창한 산림속 굽이진 오솔길을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향하니 한적한 외딴집이 보였다.
“ 계십니까? 아무도 안계시나요?”


“ 누구신가요?” 
한 청년이 문을열고 맞이 했다. 


“ 예 저희는 고려국 도강현에서 온 도공들 입니다. 이곳에 청자를 빚으시는 어르신이 계신다고 해서 찾아 왔습니다.”


“ 그러신가요.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두사람은 황도공 앞에 큰절을 올리며 자신들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이곳에온 이유를 설명했다.


“어르신 저희는 고려국 도강현에서 도자기를 빚는 도공들 입니다. 저는 이영당 이라하고, 함께온 사람은 저의 친구 양강식 이라 합니다. 저희 고려의 도자기 기술은 이곳 월주의 청자에 비하면 매우 열악합니다. 그래서 어르신께 청자빚는 기술을 전수 받고자 이렇게 목숨걸고 찾아왔습니다. 저희가 머물면서 어르신께 기술을 배우려고 하니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황도공은 두사람의 말을 듣고 한참동안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황도공은 젊어서부터 오랫동안 월주에서 청자를 만들어 왔는데, 새로운 객주가 오면서부터 황도공의 청자기술을 다른 도공에게 강제로 전수시켜 청자의 판매상권을 빼앗았다. 하는수 없이 황도공은 청자만드는 일을 접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아들과 함께 살아야만 했다.


“너희들이 이곳에 와서 나에게 청자기술을 전수받겠다는 진정한 뜻이 무엇이냐? 많은 돈을 벌고싶어서 이냐?”


‘이영당’은 황도공에게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도공은 흙을 반죽하고 형상을 만들고 그속에 혼을 넣어서 도자기를 만듭니다. 저의 혼을 불어넣을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여기까지 목숨을 걸고 어르신을 찾아 왔습니다. 부디 저희들을 제자로 거두어 주십시오.“


머나먼 고려땅 도공들이 찾아와 청자만드는 비법을 전수하여 주기를 간청하니 여간 당황스런 일이 아니었다. 청자를 빚는 기술을 가르쳐 먼 후대까지 전수하는것이 어쩌면 바람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이 마음을 가득채웠다.


“너희들의 뜻을 충분히 이해 하겠다. 나도 너희에게 한가지 부탁을 하고자 한다. 나는 이제 늙어서 세상에 살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 너희들이 여기서 청자빚는 기술을 익혀서 고려국으로 돌아갈 때 나의 아들 ‘황기형’을 데리고 가서 함께 청자를 만들기 바란다. 나의 모든 기술은 아들에게 다 가르쳤다. ”


황도공의 청자빚는 기술의 교육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뚝 솟은 천산(天山)의 가파른 절벽을 지나 깊은 골짜기까지 가서 흙을 캐냈다. 거친 바위틈속에 아기살결 같은 부드런 흙을 자루에 퍼담아 지게에 지고서 산길을 내려왔다.


흙의색은 백옥처럼 매우 밝은 흰색으로 가는채로 걸러서 큰 통에 넣고 물과함께 잘 저은후 매우가는 입자 앙금을 걷어냈다. 물기가 어느정도 빠지자 흙은 밀가루 반죽처럼 찰기가 생겨 나무 떡매로 잘 쳐서 반죽을 했다.


여느 도자기 처럼 물레를 돌려 틀과 모양을 만들고 그 늘에게 잘 말린후 초벌구이을 했다.
여기까지는 고려에서 만든 방법과 동일했는데 가장 핵심적인 기술은 유약과 불의조절 이었다. 황도공은 유약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그동안 자기가 터특한 방법을 하나둘씩 일러주었다.


“너희들이 고려국에서 도자기를 만들때 사용하던 원료와 거의 다를바 없다. 이곳 천산의 깊은 석굴에 들어가서 금강석,장석,규석,석회석,고령토를 캐오너라. 돌의 종류는 아들 황기형이 너희들과 함께 가서 가르쳐 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