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이야기) 시를 사랑한 사람들 <1>

작성일
2009.05.24 05:05
등록자
이홍규
조회수
1291
 
http://cafe.naver.com/nongchon.

하얀 목련이 봄바람에 날리어 돌담 아래로 떨어질 때 문득 창문을 열고 ‘영랑’은 떠나온 고향에 대한 생각에 젖었다. 지금쯤 고향집 장독대 밑엔 모란의 향기를 따라서 날아온 벌과 나비가 춤을 추며 찬란한 봄날을 즐기고 있을 것 인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을 뿐 이었다.


이런저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때 누군가 다가와 어깨를 뚝 치며 말을 건넸다.
“이봐 친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나? 고민이 있는거야?”


“지용이 구나! 저멀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보리밭을 바라다 보니 문득 고향생각이 나서 잠시 고향집 돌담맡에 가득핀 모란꽃을 생각했어. 해마다 봄이오면 모란꽃과 나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노래하곤 했단다.”


“너는 꽃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봄을 노래하는 능력을 가졌구나! 이런 훌륭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정말 영광이구나 하 하 하”


영랑이 서울의 휘문학교로 유학을 온 후 정지용과 친구하게 지내며 함께 공부하고 청운의 꿈을 키워갔다. 지용은 충청도 옥천의 산골마을이 고향으로 성격이 차분하며 깊은 생각과 명상을 하며 책읽는 것을 좋아한 친구이다. 영랑과는 서로 마음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우정을 키워갔다.


유난히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두사람은 학교의 도서관에서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아와 독일의 괴테의 작품을 탐독하고 유럽의 문호들이 이룬 문학의 아성을 서서히 점령해 나갔다. 인생과 문학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고 현실의 상처와 고통을 함께 느끼며 고뇌(苦惱)했다.


지용은 직접쓴 시를 영랑에게 보여 주며 시문학의 교류를 시작했다. 영랑은 자신이 느낀점을 허심탄회하게 말해 주었고 지용 또한 영랑의 작품에 대하여 예리한 심사평을 아끼지 않았다.


“지용아 나는 너의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내가 고향에 직접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대상을 선명히 묘사하여 마치 살아있는 활동사진 같은 느낌이 든다. 네기쓴 향수의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야! 영랑이 국어선생님이 다되었구나. 이제부터 영랑선생으로 모시겠습니다. ”


“농담하냐? 빨리 내가 지은 시에 대하여 너의 솔직한 느낌을 말해 봐!”


“잠시만 기다려봐! 작품을 심오하게 읽어보고 말할테니까. 너의 작품은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하는 순수서정시라고 말할수 있다. 네가 쓴 ‘모란이 피기까지’에 보면
순수한 시인의 마음을 읽를 수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영랑아 궁금한 것이 하나 있어서 하나 물어보자. 꽃이름이 원래 목단인데 모란이라고 한 이유가 있니?”


“모란은 원래 꽃중의 꽃이라 하여 화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선덕여왕이 당나라 황제에게 선물을 받아 꽃씨를 뿌린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어게된 것이다. 꽃을 목단으로 부르니 어감이 부드럽지 못하여 자연스럽게 모란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내고향 에서는 사람들이 모란이라고 부르고 있어”




휘문학교의 모든 학업을 마치고 지용은 영랑을 데리고 충청도 옥천의 고향집에 내려갔다. 실개천이 휘돌아 흐르며 더위에 지친 누런 황소가 긴 하품을 하고 느티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매미소리가 가득한 한적한 산골마을의 풍경이 영랑의 시야에 들어왔다.


실개천을 건너 오솔길을 지나 큰 은행나무 밑에 아름드리 자리잡은 고택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머니가 반겨 맞아 주셨다.
“지용이 왔구나 어디보자 객지에 나가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었겠구나. 어서들어 오너라.”


“어머니 제 친구 영랑이와 함께 왔어요. 절 받으세요”


지용과 영랑은 어머니께 큰 절을 올렸다. 작은방에서 수를 놓던 누이동생 ‘다영’이가 들아와 반가워했다.
“오라버니 오셨어요?”


“그래 다영아 그동안 잘 지냈어. 여기 오빠 친구 영랑이다 인사해라”


“안녕 하세요. ‘정다영’이라 합니다.”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은 아들과 오빠를 만난 기쁨에 이야기꽃이 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