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포 이하윤 흑백사진

연포(蓮圃) 이하윤(異河潤)

연포(蓮圃) 이하윤(異河潤, 1906. 4. 9 ~ 1974. 3. 12)은 강원도 이천(伊川, 현재의 북한 강원군 이천)에서 태어났다. 1918년 이천보통학교를 거쳐 1년 동안 한문을 공부하고 1923년 경성제일고보를 마쳤다. 1926년 일본 호세이대학(法政大學) 예과에 입학해 1929년 같은 대학 법문학부 문학과를 마쳤으며, 유학하는 동안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를 두루 공부했다. 1926년 『해외문학』동인과 1931년 『극예술』동인으로 참가했다. 귀국하여 경성여자미술학교· 동구여자상업학교 교사와 중외일보 기자, 경성방송국 편성계 근무, 콜롬비아주식회사 조선문예부장,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 등을 지냈다.

8·15 해방 뒤에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항해 설립된 중앙문화협회 상무위원을 지냈으며, 1954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에 이어 민주일보· 서울신문 논설위원을 지냈고 유네스코 아시아회의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1945년 혜화전문(현재 동국대) 교수를 시작으로 성균관대 등에서 재직하다 1949년 서울대로 옮겨 1973년 정년퇴직했다. 1926년 시대일보에 시 「잃어버린 무덤」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온 이후 초기에는 「애송(愛誦) 9편」(『해외문학』1927. 7), 「노구(老狗)의 회상곡」(『자력』 1928. 8), 「물레방아」(『시문학』1930. 3) 등을 발표했다. 이 시들은 서글픈 가락에 한국적 정서를 읊은 것이 특징적이다. 이외에 그는 프랑스· 미국의 서정시를 번역했는데, 번역시집 『실향의 화원』(1933)은 이러한 성과들이 집약된 것으로 김억의 『오뇌의 무도』(1923)에 비해 원전을 그대로 번역했고 양적으로도 더 방대하다. 시집으로 『물레방아』(1939)가 있으며, 여기에는 「석양에 먼 길을 떠났드러니」, 「다듬이 소리」 등 총 109편이 실려 있다. 이 시들은 대체로 전통적인 서정세계를 정형시에 가까운 리듬으로 노래했다.

그밖에 수필 「고향회상」(『현대』 1958. 4) 등과 평론 「단편소설의 사적 연구」(『시대일보』 1926. 7. 5 ~ 26), 「현대시인연구」(『동아일보』 1930. 11. 2 ~ 12. 28), 「근대미국문학의 발전과 그 동향」(『중앙일보』 1932. 1. 1 ~ 18) 등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