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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하얀눈이 내린 월남사지 전경
주소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0-1
전화
-
추천
5
이용시간
휴무일
이용요금
무료
주차시설
주차장 없음
장애인시설
없음
문화재관련 정보를 제공하며 문화재지정벉, 지정일, 시대, 규모에 관한 세부기준, 관리부서 항목으로 구성된 표
문화재지정번호 지정일 시대 규모
제125호 63.01.21 고려시대 일원

무위사에서 동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월남사의 옛터가 남아있다. 월출산을 배경으로 평지에 세워진 월남사는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이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월남사는 조선 중기에 폐찰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월남사지에는 진각국사비 (보물 제313호)와 삼층석탑(보물 제298호)이 남아있다.

<월남사지3층석탑>

월남사터에 남아있는 삼층석탑으로,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바닥돌 위에 기둥 모양의 돌을 세우고 그 사이를 판돌로 채운 뒤 넓적한 맨윗돌을 얹어 조성하였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매우 높으며, 2층 몸돌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였으며, 밑의 받침은 3단을 두었다. 지붕돌의 윗면은 전탑에서와 같이 계단식 층단을 이루었고, 추녀는 넓게 수평의 직선을 그리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탑신의 모든 층을 같은 수법으로 조성하였고 위로 오를수록 낮은 체감률을 보인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받침 위에 꾸밈을 위해 얹은 석재 하나가 남아 있다. 이 탑은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백제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기단 및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돌로 조성한 것이나 1층의 지붕돌이 목탑에서처럼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는 양식 등이 그러한 특징이 된다. 대표적인 백제탑이라 할 수 있는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비교해볼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에서는 규모나 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석탑이라 할 수 있다.

<월남사지진각국사비>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이다. 받침돌인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문 상태로 긴 목을 빼어들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발톱에서 보이는 현실성이나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잘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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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및 주변정보(주변10km이내)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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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문화관광실 관광진흥팀
담당전화번호
061-430-3349
최종업데이트
2024.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