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다산초당 건물 외관 모습
주소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 68-35
전화
061-430-3911
추천
17
이용시간
9시~18시
휴무일
연중무휴
이용요금
무료
주차시설
주차요금 : 무료
장애인시설
없음

강진만이 한눈으로 굽어 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18년중 10여년 동안을 생활하시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등 6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 하였던 곳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산초당은 노후로 인해 붕괴되었던 것을 1957년 복원하였고 그 후 다산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을 복원하였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이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다산선생이 시름을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다산초당을 비롯하여 이곳의 다양한 유적을 '정약용 유적'으로 통합하여 사적 107호로 지정하여 보고하고 있다. 다산초당 건물은 원래 목조 초가였으나 1936년에 노후로 인해 붕괴되어 없어졌던것을 1957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그 자리에 목조 와가로 중건한 것이다. 현판에 판각된 '다산초당'이라는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의 명승 아암 혜장 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다. 길이는 800m이며 도보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길 주변에는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경사도 완만하여 걷기 코스로 제격이다. 오솔길 중간 지점에는 해월루가 있어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다산 정약용> (1762~1836)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개혁 군주인 정조의 극진한 신임을 얻었으나 정조의 서거 후 천주교 탄압 사건에 휘말려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하게된다. 다산은 유배 기간 동안 좌절하지 않고 역경을 기회로 바꾸어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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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및 주변정보(주변10km이내)

다산초당 :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 6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