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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여행후기 - 전체

강진역사문화탐방, 맛기행 - 국중하

작성일
2016.03.22 16:51
등록자
유헌
조회수
1261

강진군*전남수필 공동기획,
강진역사문화탐방, 맛기행(3.12~13)에 참여하신
국중하 수필가님(완주예총 회장)께서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첨부합니다.
전남수필 회장 유헌


강진 문학, 맛기행

우신산업(주) 국 중 하

옛날에 제주까지 포함하여 전라도를 총괄했던 전라감영이 전주에 있었다면, 육군을 총지휘하며 제주까지 호남을 수호했던 전라병영이 강진에 있었다. 선인들의 정신을 기리고 호국의 역사를 재조명해 보기위해 떠나는 발걸음인지라 마치 전라감사가 여문사를 대동한 강진 시찰인 양 나들이 기분이 고양되었다.

조미애 시인의 전화를 받았다. 전남수필문학회가 기획하고 강진군에서 지원하는 문학기행에 초대 받았다며 함께하면 좋겠다기에 만사를 제치고 결심을 굳혔다. 평소 친경해온 공자 손孫 숙자 선생님, 김영, 조미애 시인과 함께라면 언제라도 어디라도 마다할 이유 없을 만큼 좋은 나들이가 될 터라 설레기까지 했다.

12일 오전 8시 30분에 출발을 했다. 성격이 차분하고 온건한 조미애 시인이 운전을 하고, 운전의 베테랑인 김영 시인이 조수석에서 내비를 토대로 도란도란 조언하며 나누는 대화가 정답기 그지없다. 앞좌석의 두 여인이 똑 소리 나는 전북여성 문인의 대표주자라 했더니 숙자 선생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공 선생이 챙겨온 잘 건조된 곶감, 직접 마련했다는 고구마 말랭이 등을 내놓아 오물거리며 편안하고 화기애애하게 도착예정시간인 11시에 영랑생가 주차장에 닿았다.

주차공간을 찾고 있을 때 강진군청 문화관광과 최재영 차장이 다가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강진문화답사 기행을 위해 마련된 버스에 승차하기 전에 가까이에 서게 된 문인들이 상호간의 인사 나눔이 활발했다. 박종규 회장은 사모님과 함께 서울에서 오셨고, 대전에서 강방원 수필가님, 전주, 광주, 목포시문학회, 순창, 광양, 여수, 진도 등지에서 오신 문인들이 어우러지며 자못 어릴 때 소풍가던 기분을 재연하는가 싶었다.

남도사투리로 현대 서정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영랑 김윤식 선생의 시혼이 살아 숨을 쉬고 있는 생가를 둘러보고 인근의 ‘사의재’로 되돌아 왔다. 이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18년(1801~1818)동안 유배생활을 하는 중, 1801년 유배 당시 어렵사리 처음 얻게 된 동문 밖 매반가 주모가 내어준 거처였다. 골방인 뒷방에서 제자를 여럿 가르쳤는데 당호를 ‘사의재 四宜齋’라 한 것은 “생각, 용모, 언어, 동작 등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으로였다.
“생각은 맑게 하되/ 맑지 않으면/ 더욱 맑도록 하고//
용모는 단정히 하되/ 단정치 못하면/ 더욱 단정히 하고//
말은 요점만 말하되/ 말이 많으면/ 더욱 말을 줄이고//
행동은 조심스레 하되/ 조심스럽지 못하면/ 더욱 조심히 하라”
라는, 의미의 사의재에서 4년, 고성사 보은산방에서 2년, 제자 이학래의 집에서 2년, 다산초당에서 10년의 유배생활을 겪으셨다.

점심은 남도음식명가 병영 ‘수인관’에서 옛 병사들이 숯불에 구워먹었다는 돼지불고기를 맛보았다. 그 자리에서 주최 측의 요청에 의해 우리 전주 팀들은 공히 앞으로 나섰고 조미애 시인의 소개로 일행 모두에게 정식 인사를 했다.

‘한골목길’을 따라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을 들렀다 성남리에서 지로리 회관까지 약 1.5km의 골목, 넓고 길다 해서 ‘한골목’이라는 이름을 붙여졌단다. 병영마을도 옛 병마절도사의 영營이란 명칭에서 유래된 마을이름이다. 한골목(문화재 264호)은 병마절도사가 수인산성을 순찰할 때 통행했던 길인데, 황토와 돌을 번갈아 빗살무니 방식으로 쌓은 토석 담인 것이 이색적이다. 마을사람들은 ‘네덜란드 형식’의 돌담이라며 하멜관련 유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여문사와 함께(사진) 한 골 목(사진)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은 강진의 북단 성으로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축조하여 1895년까지 조선조 500여 년간 전라남도와 제주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 지휘부였다. 성곽의 길이는 1,060m, 높이 4.87m, 영내면적 28,175평인데 성내의 14개 건물은 소실되고 없지만 성곽은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소실된 내부건물은 복원 중에 있다고. 병영성은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 의 저자 헨드릭 하멜(Hendric hamel)이 1656년 강진병영으로 유배되어 7년 동안 살면서 노역했던 곳으로 주변의 ‘하멜 기념관’과 함께 하멜관련 역사문화 유적지로서의 보존가치가 높아 보였다.

하멜기념관은 네덜란드인 하멜이 일본으로 이동하던 중 제주도에 표착하여 서울, 강진, 여수 등에 유배되어 13년간 살았는데 강진군은 이를 기념하여 1998년 하멜의 고향 네덜란드 호르큼 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문화적 교류를 통해 2007년 12월 하멜기념관을 개관하였다. 목조타원형의 전시관에는 하멜표류기를 비롯하여 하멜의 생애, 17세기 조선과 네덜란드의 사회, 문화, 생활상과 자매결연 등 주제별로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했다. 당시의 동서양 도자기, 생활도구, 고지도 등 150여점의 유물을 소장 전시하고 있었다.

무위사無爲寺는 무소유와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천년의 고찰이다. 원효 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도선 국사가 중창했다. 고려 초에는 선종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 시대에는 수륙사水陸社로 알려졌다.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재水陸齋를 행하였던 사찰이다.
국보 13호 극락보전은 세종12년(1430년)에 건립되었다. 맞배지붕으로 이뤄진 주심포식 건물로 조선초기건축양식을 연구하는데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효령대군이 강진에 머물 때 나라와 왕실을 위해 명복을 비는 장소로 삼았던 곳이다. 국보 313호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 삼존벽화는 조선성종 7년 (1476년)에 화원대선사 해련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다. 온화한 색채나 신체의 표현 등 고려시대의 특징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간결한 무늬나 본존불과 같은 크기의 기타 인물표현 등 조선초기 불화의 새로운 특징들이 잘 나타나있어 고려 식의 조선 초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무위사 석탑과 개불대(사진) 배 례 석(사진)

그밖에도 보물로 지정된 무위사 선각대사탑비, 아미타여래삼존좌상,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등의 보물이 많았다. 1430년 세종 둘째 형 효령이 다녀갔다는 표식으로 극락보전 앞마당에 배례석拜禮石과 당간지주모양의 개불대가 있다.

강진백운동정원은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알려졌다. 원림, 계곡, 유상곡수 등 호남전통 별서 정원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다산 정약용 선생이 초의선사와 함께 찾아 유숙한 뒤 ‘백운첩’이 제작되어 전해진바 다산의 체취가 살아있는 공간이다.

강진 다원을 거쳐 이한영 생가(다향산방)를 둘러봤다. 이한영(1868~1956)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녹차상표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를 브랜드화하여 19세기 한국 다사의 맥을 이어온 다인이다. 생가를 복원하여 방문객의 휴식공간으로 쓰고 있다.
예로부터 월출산 주변의 여러 사찰을 중심으로 차나무가 재배되어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월출산에서 나오는 차가 천하에 좋은 차라고 극찬했다는데, 강진다원이 넓게 펼쳐 푸른색으로 채색된 장관이어서 일행들은 사진 찍기에 바빠했다.

월남사지는 월출산 남쪽에 있던 고려시대의 대규모사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 고려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월남사를 창건하였다는 기록만 전해오고 있고, 백제계양식의 삼층석탑과 진각국시비가 남아 월남사의 규모를 알려주고 있다. 월출산 남쪽 전경의 평온한 아름다움의 명당이다.

만찬은 ‘한정식 다강’ 에서 가졌는데 나는 식전 건배사 청을 받고 일어섰다. 강진문학기행은 전남수필문학회가 기획하고 강진군에서 지원하고 안내까지 맡아서 능동적으로 수행했다. 전남수필문학회 유헌 회장이 일행들에게 짬짬이 기행문을 꼭 써 달라고 챙기는 것도 퍽 인상적이었다. 그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기행문 형식의 시와 수필, 아동문학, 소설까지를 ‘강진문학기행’으로 묶어 전국 각지에 배포하면 과시 광고효과가 대단할 것으로 헤아려졌다. 하여 나는 건배구호를 ‘문학’은 이라고 선창할 터이니 모두가 ‘경제다’라고 화답해 달라고 했다.

우렁찬 건배 화답이 끝난 뒤 큰 박수 소리가 뒤따랐다. 이번의 행사를 전폭 지원해준 강진군에서 이 소리를 들으면 참 좋아 하겠다는 속삭임들이 여기저기서 일었다. 바로 그거였구나 싶었다. 군에서 문학인들과 함께 강진군의 자랑거리를 홍보하고 한옥마을에 유숙객들도 유입하게 하는 훌륭한 연출 무대를 마련하고 전국의 문인들을 연출자로 무대 위에 올려 세운 것이었다. 나는 완주예총회장의 자격으로 완주군에도 유사한 행사를 건의해볼 작정을 해 보았다.

‘강진 달빛 한옥마을’ 회관에서 ‘북소리콘서트’, 그리고 시낭송회를 마치고 숙소를 정하는 추첨이 있었다. 나는 ‘별바라기’(숙소명)를 뽑았다. 전남문인협회 주광현 부회장, 향토사가 진도학회 박주언 부회장과 함께 김희순 주인장과 악수를 하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한옥마을의 한옥들은 200평 대지에 30평 규모의 한옥 30호를 건립할 계획에 현재 27세대가 완공됐고 3세대는 아직 공터로 있다. 군에서 세대 당 6천만 원을 무상지원하고 거의가 외지에서 들어온 세대들이다. ‘별바라기’에 도착하니 방이 2개였다. 내가 독방을 쓰기로 하고 우리는 거실에서 티타임을 갖었다. 김희순 주인장과 함께 차상에 마주 앉아 다과를 나누면서 담소했다. 대들보엔 2012년 10월이라고 새겨있었고, 철도 공무원 댁인데 이젠 자리가 잘 잡혀보였다. 추후 서로 연락하기로 하고 밤 10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외풍은 좀 있지만 바닥이 따뜻해서 좋았다.
온돌이라 딱딱했지만 숙면을 했다. 평소대로 새벽4시에 기상하여 세수하고 밖으로 나갔다. 가로등이 있어 어둡지는 않았다.
한옥마을을 몇 바퀴 돌았다. 마을주위 하천의 물소리, 산 너머 남해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 소리를 들으며 마을 공동휴식 공간 등 집들의 규모를 살피면서 전주의 한옥마을과 비교를 해봤다. 규모는 비교가 안 되지만 전주 한옥마을은 예로부터 살던 집으로 이뤄진 한옥이라 집집마다 특색이 있지만 강진 달빛한옥마을은 30평 규모의 일자 아니면 기역자 형으로 통일되어있어 맛은 아주 달랐다. 마을 옆 산 정상에 전망대가 보이는데 조명등이 없어 바라만 보고 오르지 않았다.
이장이 마을을 잘 이끄는 것 같아 장래가 밝은 한옥마을이라고 느껴졌다. 숙소의 현관문이 자동으로 잠겨있었다. 문을 두드리고 한동안 반응을 기다렸다. 주인장이 자다가 일어나 문을 열어준 것이 못내 미안했다. 아침 식단이 푸짐했다. 도미구이에 시원한 냉이 국, 밭에서 직접 캐왔다는 나물무침, 김치 등 맛이 있었다. 후식으로 차와 딸기를 곁들여 냈다. 원래 1박2식에 인당 4만원이라니 저렴하면서 친절하고 성의를 다하는 모습에 더욱 고마움을 느꼈다. 여러 각도에서 전주한옥마을과 비교가 되었다. 전주시장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꽤 많을 것 같았다.

08시15분에 민박 주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백련사로 이동했다. 백련사白蓮社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하여 1170년 원효 국사 요세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다. 본래 만덕사가 고려후기 백련결사를 열어 80년간 민중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고려 8국사와 조선 8대사를 배출한 천년고찰이다. 석축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만경루 앞에 해탈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만경루가 맨 앞에 있어 누하樓下 신비의 길을 거쳐 대웅전으로 들어간다. 천연기념물 151호인 백련사동백나무숲은 5.2ha에 7,000여 그루 동백나무가 집단으로 군락을 이뤄 자생하고 있다.

다산 선생이 백련사에 절친한 벗 혜장惠藏스님과 자주 오르내렸다는 동백나무숲길을 따라 걸으면서 200년 전 다산선생의 향훈을 음미하며 걷고 걸어서 다산초당에 도착했다. 다산 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18년(1801~1818)간의 유배 기간 중 10여 년간 생활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를 비롯한 500여권의 책을 저술했던 조선실학의 산실이다. 정석丁石, 약천藥泉, 다조,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 등 다산 4경이 있어 선생의 손길이 다사로이 느껴진다.
다산초당 아래 서암西庵은 윤종기 등 18인의 제자가 기거하던 곳으로 차와벗하며 밤늦도록 학문을 탐구한다는 뜻으로 다성각茶星閣이라고도한다.

다산기념관은 2014년 7월 26일 다산정약용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영정, 다산 연보, 가계도, 다산의 일생, 다산의 업적과 유물 등이 입체감 있게 전시되었다. 남양주시 다산유적지(다산묘소), 실학박물관에서도 다음달 7일 다산선생 180주기 묘제墓祭 및 헌다례獻茶禮에 초대받고, 큰사람의 그늘은 하늘을 가리는구나싶었다.

다산초당 (사진) 출렁다리(사진)

가고 싶은 섬 ‘가우도駕牛島’는 바다와 산을 함께 하고 있는 섬이다. 강진 대구면을 잇는 길이 438m 저두출렁다리와 도암면을 잇는 길이 716m 망호출렁다리가 연결되었다.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생태탐방로 ‘함께해(海)길’ 2.5km는 산과 바다를 감상하며 죽도, 해상복합 낚시공원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천혜의 트래킹코스다. 섬의 규모를 보면 9만7천 평에 14가구 31명이 후박나무 군락과 함께 정답게 살고 있다. 가우도라는 이름을 풀이하면 강진읍 보은산이 소머리형상인데 섬의 생김새가 멍에형상으로 멍에가駕자를 따서 가우도라 부르게 되었다니 아마도 강진군은 느리지만 쉬지 않고 뚜벅뚜벅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에는 망호출렁다리를 건너 2.5km ‘함께해 길’ 코스의 소요시간이 80분으로 되어있는데 시간에 쫒긴 우리일행은 30분 만에 돌아 나왔다. 일행이 된 문인들의 건각을 짐작하게 하지 않은가.

오찬을 하기로 예약된 마량 궁전횟집에 도착했다. 강진에서 직선거리로 제주까지 가장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옛 지명이 탐진이라 했나싶다. 그렇다면 마량미항의 옛 이름이 탐진항이었을 법도 하다. 이곳에서 한정식 코스 요리를 감식했다.

강진 청자촌은 9세기부터 500년 동안 집단적으로 고려청자를 생산했던 곳으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국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청자의 80%이상이 강진에서 생산되었음을 입증하듯 판매장에는 관요를 비롯하여 26개 민간요업의 다양한 청자제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고려청자 다기(5인용) 1세트를 구입했다. 버스 안에서 또 강진군에서 준비한 선물이라며 뚜껑 달린 고려청자 컵을 선물로 받아들며 싱글벙글하는 일행들을 나또한 마주 웃어보였다.

처음 출발했던 영랑생가 주차장에 도착하여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최재영 차장 소개로 강진 토하젓 판매장을 들렀다. 선물용 토하젓 몇 개를 구입했는데 친절한 서비스와 차 대접, 그리고 아스파라카스 순 4다발을 선물로 받아들었다. 과시 최재영 차장! 끝까지 강진의 훈훈함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특급이다 싶었다. 강진군에서 준비한 볼거리, 들을 거리, 먹을거리 등의 향연이며 고려청자 선물까지 무량한 것들을 가슴에 여미며 돌아온 셈이다. 전라감사 호남을 수호하는 전라병영성에 내려가 너무 진한 민폐를 안기고 돌아온 느낌도 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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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2020.05.27